콜센터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이들

전설이 된 그들은 지금 어디에

by 주운

5년간 내가 콜센터에서 같이 일한 직원은 몇 명이나 될까.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메신저의 친구 목록을 확인해보니 150명이나 된다. 당연히 [퇴사] 그룹의 친구 수가 훨씬 많다. 금방 퇴사한 사람들은 메신저에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았으니 잠시라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못해도 500명쯤은 될 거다. 고작 30명 정도 다니는 작은 규모의 콜센터에서는 엄청난 숫자다.

지식이 많거나 기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급여는 바닥이고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아 금방 그만두는 직원이 많다. 어제 봤던 직원이 어느새 없어져 있고, 또 우르르 신입들이 몰려오는 걸 보면 여기가 시장통인지 헷갈리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구직자들이 피해야 할 기업 중의 하나가 항상 채용공고를 올려놓는 회사라는데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콜센터의 여러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콜센터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일까. 어쩌면 콜센터는 지금 이대로, 문제 투성이인 채로 남아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이렇게 오가는 사람이 많다 보니 별난 사람도 많다. 진상 고객이 화제가 되지만 그에 못지않은 진상 상담원도 있다. 어느 콜센터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들이 있을 거다. 몹쓸 고객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함께 얼굴 보며 일한 상담원들 더 기억에 남는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다.

콜이 많아 통화대기가 10분 가까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겨우 통화연결이 되고 고객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고 소리를 지르자 거기에 대고 '저는 지금 바로 받았습니다만?'이라고 대답해서 고객의 말문을 막은 상담원이 있었다. 취소수수료를 못 내겠다는 민원 고객이 도대체 수수료는 누가 만든 것이냐고 묻자 콜센터 팀장 이름을 대며 '저희 고객센터 OOO 팀장님이 만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해 동료들을 기함하게 한 상담원. 심지어 OOO는 팀장이 아니고 신입 상담원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던 선임 상담원이었다. 고객에게 문자를 발송하는데 메모장에 적어놓은 내용을 복사하다가 '민원 아저씨'라고 써놓은 부분까지 보내 놓고 얼른 전화해서 사과했던 상담원도 있다. 돌이켜보면 웃긴 일인데 그 당시에는 정신이 아찔해진 큰일이었다.


다행히 메모 속의 '민원 아저씨'에게 문자가 발송된 것은 아니고 전혀 다른 고객에게 발송한 건이라 사과하고 끝났다. 내 일도 아닌데 얘기를 듣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놀란 일이었다.


저런 특이한 에피소드는 없어도 심각하게 일을 못 해 이름이 오래도록 남는 상담원도 있다. 콜센터 업무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아무리 교육을 하고 관리자가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상태로 상담에 투입되다 보니 고객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상담원을 답답해한다. 다른 상담원과 통화하기 위해 전화를 끊고 다시 거는 고객도 있고, 상담원 교육이 필요하다고 민원통화를 요청하는 고객도 있다. 금전적 보상이 발생하는 실수로 일으켜 회사에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 상담원이 통화했던 고객이 다시 인입되면, 실수가 발생해서 뒤처리를 해야 하거나 불만이 심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주위 상담원들도 피곤해진다.

함께 일하며 느낀 건 그들은 복잡한 일을 싫어하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았다. 일하다 보면 당연히 모르는 점이 생긴다. 그러면 직접 테스트를 해보거나, 관리자나 본사 담당자에게 문의하고 답을 받아 고객에게 안내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몹시 귀찮아해서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 때론 고객의 상황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듯 보이기도 했다. 나도 요새는 일에 지쳐 고객의 문제를 내 일처럼 받아들이면서 상담하지는 않지만, 고객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은 갖고 일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받고 있는 전화만 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충 상담한다. 자신에게 기대하는 적정 콜 수만 받으면 된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들이 대충 상담한 고객이 나에게 다시 들어와 불만을 제기하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관리자에게 크게 혼나는 모습을 보면 또 안쓰럽다. 동료들과의 점심시간에는 그들에 대한 뒷담화가 많이 나온다. 평소에 뒷담화를 하지 말아야지 마음먹으면서도 가끔은 정말 짜증이 나서 내가 먼저 뒷담화를 시작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직접 얘기할 일이 있으면 나라도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에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 한다. 앞에서는 친절하고 뒤에서는 욕하고, 안쓰럽다가 미워했다가... 지금 보니 진짜 고약한 건 나다.


그들을 통해 나를 본다. 그들보다는 낫다는 안도감,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는 자기 위안 혹은 위선. 들여다볼수록 추한 내가 보이는 듯해 슬프다.


어쩌면 회사 입장에서는 진상 고객보다 그들이 더 힘든 존재다. 진상 고객이야 한 번 고생하면 되지만, 진상 상담원은 계속 문제를 만들고 평범한 고객도 민원 고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상담원을 자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제 발로 나가게 하려고 관리자도 어쩔 수 없이 심한 말을 한다. 의외로 근태는 굉장히 좋은 경우가 많다. 업무 외적으로는 책잡힐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결근이나 지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게 그들의 생존전략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런 상담원들은 콜센터 안에서 정말 외로워진다. 관리자에게 매일 불려 가 크게 혼나고 상담원 누구 하나도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고객과 관리자로부터 모멸감이 들 만큼 심한 말을 듣고도 꿋꿋이 버티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상황까지 내몰리면 그때 퇴사를 한다. 저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왜 그만두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동료가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콜센터를 전전하며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혼쭐이 나다가 몇 개월, 1년을 버티고 그만두는 일이 생활이 된 게 아닐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 다른 콜센터에서 여기에서와 비슷한 생활은 하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일을 못 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이 밀려나고 도태되는 건 당연한 일이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그렇게 되길 바란 것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과, 사회가 모든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내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주제넘게 남 걱정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조금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13화콜센터에서의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