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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Nov 22. 2018

콜센터에서의 5년

지나온 5년을 생각해본다. 정말이지 5년간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순식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9살이었던 내가 34살이 되었지만, 나의 삶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며칠 전 동료가 내가 입사했던 2013년도의 콜센터 회식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지금보다 젊어 보이는 과거의 나를 보고 놀랐다. 그래도 5년간 얼굴은 늙었구나 하는 다행스러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5년은 짧은 시간은 아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 졸업할 수도 있는 세월이다. 미혼이었던 누나가 결혼해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고, 친구들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전과는 한참 다른 삶을 산다. 나만 그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주 6일 콜센터 근무를 해왔으니 적게 잡아도 한 달에 1,500 콜은 받았을 거다. 1년이면 18,000 콜, 5년이면 9만 콜이다. 너무 엄청난 숫자라 놀랍다. 나를 만난 고객을 모아놓으면 작은 도시를 이룰 만큼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그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조금씩 쏟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게 무섭고 질려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는 걸 좋아하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를 속인 시간이었다. 지독한 속물에다가 남의 시선에 갇혀 사는 못난 나라서 콜센터 다닌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5년 동안이나 친구들, 가족들에게 그냥 작은 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콜센터에 다닌다는 사실은 회사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회사 얘기를 주로 하게 되는데 할 말이 없어 술잔만 들이키는 내가 정말 싫었다. 콜센터에 다닌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더 부끄러워 숨어만 지낸 5년이었다.

그저 숨만 쉬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사는데 읽는 건 한 달에 한 권이나 될까 말까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런 의욕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누가 보면 놀랄 만큼 많은 양의 배달음식을 시켜 허겁지겁 욱여넣고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대다 잠들던 한심한 시간이 전부였다.

인연의 소중함을 느낀 시간이기도 하다. 결코 좋은 친구가 아닌 나를 고향 친구들이 참 아껴줬다. 먼저 연락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내게 항상 먼저 연락해주고 찾아와 줬다. 영원한 인연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외롭고 우울한 시절에 위로가 되어준 보물 같은 친구들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의 아침은 항상 '즐월!', '즐화!'라는 메시지로 시작된다. 매일 똑같은 별것 아닌 아침 인사가 내겐 의외로 힘이 되는 것을 이 녀석들은 알고 있을까


전쟁 같았던 엄마와의 사이가 조금은 차가워진 시간이었다. 엄마는 자신 있고 대담하고 단단한 아들을 바랐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오히려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수줍어하고 소극적이고 민감하고 심약한 사람으로 자랐다. 엄마는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자라는 나를 못마땅해했지만 비난하고 윽박지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잘 알지 못했다. 사춘기 이후 엄마와 나의 다툼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엄마와의 다툼은 계속되었다. 엄마에게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 지금은 명절에도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는다. 가끔 만나는 엄마는 예전같이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도 화내는 일이 없다.

나는 서른 중반, 엄마는 곧 있으면 환갑이다. 나이 든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가 잘못을 깨닫고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 지난 나의 아픔을 상기시키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 그냥 지금 이대로 못난 내 삶을 합리화할 수 있는 도구로 남아주는 것, 내 원망 받이가 되어주는 것....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모든 게 엄마의 잘못이었는지도 헷갈린다. 그냥 엄마의 삶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 주고받은 상처를 마주할 수 있을까.

지난 5년간 나의 전부였던 콜센터를 올해는 기어코 떠날 거다. 콜센터 안에만 갇혀 살던 시간이 길어서 이곳 밖의 내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맞게 될 35라는 나이가 밉다. 익어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론 썩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 허무함, 배신감 같은 마음일까. 조금도 철들지 못하고 나이를 먹고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괴물 같아 보일 때도 있다. 5년 뒤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생각하다가 무엇이라도 되어 있기만 해도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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