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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Nov 18. 2018

콜센터라는 사회

아직도 <미생>을 끝까지 못 봤다. 처음 웹툰을 접하고 어떻게 이렇게 현실적인 직장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까 감동하며 보는데 회를 넘길수록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직장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조금 가볍게 다루지 않을까 싶어 다시 시도했는데 역시 중간에 포기했다. 웹툰 속의 2D 캐릭터가 배우로 변하니 더욱 현실처럼 느껴져 기가 빨리고 지쳐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나는 직장을 다루는 드라마도 제대로 못 볼 만큼 사회생활을 못 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낙오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콜센터에 들어오기 전에 다닌 회사들은 1년을 버틴 적이 없다. 겉보기엔 번듯한 회사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안 좋은 점만 보였다. 미래의 나의 모습인 대리, 과장은 일에 찌들어 생기 없는 좀비처럼 보였다. 여기서 내 젊음을 바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그다음 회사도 비슷했다. 처음 회사에 다닐 때보다 나이가 들어 직장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회사와 견디기 힘든 상사 때문에 금방 그만뒀다.


그때는 포기하는 용기, 그만두는 용기라고 생각했었지만, 변명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절박하지 않았고, 여길 나가도 금방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버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회생활에 극도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서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수직적인 조직문화, 엄격한 위계질서, 상사와 동료 간의 관계 같은 것들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주 좋은 회사는 아니었어도 이름이 알려진 중견기업을 어렵게 늘어가 놓고도 금방 포기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백수생활을 하며 돈이 급해져 콜센터를 들어왔다고 했지만, 선택의 이유에는 일반 기업과 다른 곳이라는 점도 있었다. 상사, 동료들과 크게 연결되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만 받으면 될 것 같았다. 텃세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워낙 튀지 않고 무난한 성격이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적은 별로 없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콜센터에 들어와서는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들은 지키려 했다. 5년 동안 10분쯤 지각한 게 두 번이다. 책임감 있게 상담하려 해서 일 처리가 깔끔하다거나 믿음직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해지면 선배들을 편하게 대하더라도 예의는 지킨다. 문제는 이게 끝이라는 거다. 사회생활의 핵심인 사회성이나 처세술은 부족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상사, 동료와 힘을 합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일은 아니라서 확실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덜하긴 했다. 인바운드 콜센터라 야근이 없고 회식도 드물다는 점도 좋았다. 관리자가 되지 않는 이상 상담원에게 승진은 없기에 진급을 위해 직장 내의 힘 있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를 할 일도 없다. 인센티브 등급을 정하는데 팀장 평가라는 항목이 중요하게 반영되긴 하지만 고작 10만 원 더 받자고 관리자에게 잘 보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같이 사회생활에 젬병인 사람도 5년이나 다닐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술 한잔 나누는 것은 좋지만, 회식은 싫다. 듣기 싫은 얘기를 들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야 해서일까.


하지만 콜센터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사회생활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간단한 업무를 아무리 알려줘도 이해를 못해서 실수하는 사람, 고객과의 OB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대충 일 처리를 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무책임한 사람, 아무렇지 않게 지각과 결근을 반복해서 동료들의 일을 늘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동료, 관리자의 미움을 받는다. 정도가 심한 사람은 제 발로 회사를 나가게 하려고 관리자가 심하게 혼내는 일도 봤다. 일 못하는 직원에게 인격모독에 가까운 이야기를 뱉어내는 관리자를 보면서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관리자의 답답함도 이해가 되었다. 늘 감정만 앞서는 내가 회사와 관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보고 사회의 때가 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게는 어쩌면 반가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콜센터에서 배운 사회생활도 있다. 할 말은 하고 요구할 때는 해야 한다는 것. 내 욕망을 드러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답답이인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화병 날 때가 많은 나였다. 입사하고 2년쯤 일반 상담업무보다 훨씬 편한 VIP 상담부서로 갈 기회가 생겼다. 팀장이 일반 상담업무를 하는 이들 중에서 대상자를 뽑는데 일반 상담원 중에서는 내가 가장 오래된 직원이기도 했고, 상담품질 점수나 직무 이해도에서 나보다 나은 이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대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정된 이는 나보다 1년 늦게 입사한 후배였다. 대단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화나고 억울했다. 마음속에서는 팀장에게 쫓아가 내가 뽑히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선정된 후배와 절친한 사이였고 그보다 내 욕심을 드러내는 게 부끄럽고 나로서는 도저히 못 할 짓인 것 같아 속앓이만 하며 넘어갔다.


내 기분이 이렇다, 나는 이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게 왜 이리 힘이 들까. 부드럽게 자기주장을 하는 이들이 부럽다.


5년쯤 다니니 일에 질릴 대로 질렸다. 올해 말로 퇴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두려운 게 없어졌다. 당장에라도 그만둘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부당한 상황에 놓이면 득달같이 팀장에게 따진다. 부당함을 말하고 요구하는 일이 아직도 어렵지만, 속앓이는 줄었다. 내 욕망을 드러내도 나를 아주 이기적이거나 속물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올해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어디에나 진상은 있다는데 까칠하고 괴팍한 상사와 함께 일할 생각을 하면 벌써 숨이 막힌다. 나이만 먹은 채로 냉혹한 사회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두려워하던, 두려워하지 않던 결국은 견뎌야 할 일이다. 자기 위로를 해보자면 나는 콜센터에서 5년이나 버텼다는 사실이다. 일반 기업과 분명 다른 점이 많지만 콜센터도 사람 사는 사회다. 지긋지긋했던 5년간의 콜센터 생활에서 내가 배운 점이 분명히 있을 거다. 어쩌면 지난 5년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믿는 것은 사회를 마주할 용기가 아주 조금은 생겼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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