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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Nov 28. 2018

직업병

닭장이라는 말이 딱이다. 넓지 않은 사무실에 쇼핑, 도서, 티켓 부서의 백 명이 넘는 상담원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전화를 받는다. 모니터 2개를 넣으면 꽉 차는 좁아터진 책상이 유일한 나의 공간이다. 사람은 많은데 환기는 되지 않아 사무실에서는 항상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전화를 받으며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회사의 잘못 때문에, 혹은 잘못이 없는데도 잔뜩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한다. 고객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회사다. 내가 하루에 몇 콜을 받는지, 후처리는 몇 분을 쓰는지 감시하며 후처리가 길어질만하면 얼른 콜을 받으라고 몰아세운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눈치 보여 급하게 다녀오거나 최대한 참는다. 월급이라도 많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이 반갑지도 않다. 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다지 재밌지만은 않은 상담원의 직업병을 써보려 한다.


가끔 회사 밖에서도 상담원이 될 때가 있다. 한 번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지하철 노선도 앱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다운받아 드리려고 했는데 플레이스토어와 연결된 구글 계정이 없으셨다. 회원가입을 도와드리는데 내가 내려야 할 역이 되어버렸다. 할아버지에게 이번에 내려야 해서 도움을 못 드리겠다고 말을 하려다가 난데없이 '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해서요...'라고 말이 나와서 엄청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가끔 내가 고객에게 연락을 드렸는데도 '감사합니다. OOO 고객센터 박주운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인사를 해서 고객도 나도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주위 동료들도 다른 고객센터나 음식점에서 상담원이나 종업원을 부를 때 '고객님'이라는 말실수를 한다고 했다.


콜센터에 다닌 이후로 다른 콜센터에 전화하는 게 편치 않다. 다들 고생하는 걸 뻔히 알기에 최대한 친절하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진상 중에는 콜센터에 다니는 이들도 많다.


상담품질 관리팀에서 항상 지적하는 게 사물 높임, 제3자 높임이다. '취소수수료가 나오셔서', '배송기사님께서'와 같이 고객이 아닌 사물이나 제3자에 존대어를 사용하는 실수이다. 문법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최근에는 고객들도 어색하게 생각해서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민원이나 까칠한 고객을 상담하다 보면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말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과도하게 높임말을 쓰다가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습관적으로 사물 높임을 사용하는 동료는 고객에게 "'좌석이 없으셔서요'라고? 초등학교도 안 나왔니?"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당연히 주의하고 고쳐야 하는 문제지만, 상담원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일기예보에 민감해진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 있었던 메르스, 태풍, 지진 같은 재난 상황에서 콜센터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공연은 진행되지만 관람을 못 하는 고객이 생겼다. 왜 이런 재난 상황에서 공연이 취소되지 않는지 항의하는 고객, 반대로 공연이 취소된 것에 대한 민원이 발생했다. 지난 토요일에 꽤 많은 양의 첫눈이 내렸다. 혹시나 눈과 관련된 문의가 있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 때문에 차가 막혀 제시간에 도착을 못 할 것 같다는 문의가 많았다. 실내 공연이라 눈과 상관없이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니 별도의 도움은 드리기 어렵다고 안내하자 불만이 잇따랐다. 내일의 일기예보에 비나 눈,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면 괜히 민원이 많을까 걱정이 된다.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 생겨도 사건 자체에 관심이 가기보다 혹시라도 업무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고객에 맞춰 감정을 통제하는 일이다 보니 진짜 내 마음은 지쳐만 간다. 민원고객, 진상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내 감정도 동요하기 마련인데도 표출할 수 없다. 고객에게 내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만 드러내는 게 회사에서 바라는 일이다. 나는 마음이 없는 돌멩이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나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은 고객 앞에서 상처 받지 않는 건 쉽지 않다. 집에 오면 마음이 텅 빈 듯이 헛헛하다. 감정을 조절하는 게 매일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을 만나서 감정을 쏟는 게 일처럼 느껴진다. 무기력해지고 주위의 모든 관계에 노력하는 게 싫어진다. 


상담원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닐까.


진짜 병에 걸리기도 한다. 건조한 곳에서 하루 종일 말하다 보니 목이 자주 아프다. 공기가 탁하고 좁아터진 곳이라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양옆, 또 그 옆으로 점점 전염된다. 한 번은 내가 독감에 걸려서 며칠 고생하다가 겨우 낫고 보니 내 주위 사람들이 다 독감에 걸려있어 굉장히 미안했던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통화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거북목이라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며 일해서 안구건조증은 다들 달고 산다. 점심 먹고 바로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에 마른 이들도 배만 나온다. 

몸보다 더 아픈 게 마음이다. 우울증, 불안증세로 퇴사하는 동료를 종종 본다.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동료도 있다. 친한 선배 한 명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든다고 한다. 병원도 다니는데 쉽게 낫지는 않는듯하다. 마음이 아프다.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증, 식이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마른 사람은 더 마르고 통통한 사람은 훨씬 살찌는 곳이 여기다. 

나도 오늘 아팠다. 요새 계속 밤늦게 야식을 먹고 나서 바로 누워 자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평소에도 항상 목이 쉬어있긴 했는데 오늘은 엄청나게 심했다. 목감기에 걸린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고 기침이 계속 난다. 몸에 열까지 나고 기운이 없어서 점심시간에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뭐 좋은 회사라고 병들어가며 다들 꾸역꾸역 다니나 싶다.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정녕 퇴사 말고는 답이 없을까. 상담원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고객센터는 이 나라에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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