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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Dec 15. 2018

"상담원도 고생했어요"라는 말

내가 일하는 콜센터의 민원 수수료 때문에 생길 때가 많다. 예매한 티켓을 취소할 때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공연 일자에 임박해서 취소할수록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가 많아진다. 예매한 후에는 좌석, 할인율, 결제수단 등의 '변경'도 되지 않아 이에 대한 불만도 많다. 예매한 이후에 더 좋은 좌석이 나오거나, 더 큰 할인율이 생겼을 때에도 취소하고 다시 예매해야 하고 취소 시점에 따른 수수료가 부과된다.


취소수수료는 부과되는 게 맞는 듯하다. 고객이 예매해서 좌석을 확보하고 있던 기간 동안 다른 고객은 예매할 기회를, 공연 기획사는 좌석을 판매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취소할 때에는 그에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취소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가 없다면 이를 악용해서 많은 좌석을 예매해놓고 있다가 취소 마감 시간 직전에 갑자기 취소하게 되면 공연을 주최하는 기획사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변경이 되지 않는 점이 문제인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하고 안타까워 보이다가도, 5년 넘게 회사 입장을 대변하며 일하다 보니 예매할 때 변경이 안 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뭐가 문제일까 싶기도 하다.

지난주에도 수수료 때문에 고객과 하루 종일 실랑이를 했다. 저녁 11시 30분 넘어서 콘서트 티켓을 3매씩 2건을 예매했고, 예매한 지 1시간도 안 돼 1건을 취소한 고객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공연을 주최하는 기획사가 아닌 티켓 판매대행처이므로 예매수수료가 장당 1천 원씩 부과된다. 문제는 예매한 당일 취소할 때에만 예매수수료가 환불되고 예매 익일부터는 환불되지 않는데, 고객은 예매한 지 1시간도 안 되어 취소했지만, 일자가 바뀌어서 예매수수료 3천 원이 환불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이 취소한 티켓은 관람할 티켓이었는데 본인의 착오로 잘못 취소를 한 것이었다.

고객은 취소한 좌석을 다시 예매하고 콜센터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연락을 줬다. 예매한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취소했는데 생돈 3천 원을 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고객에게 상황은 안타깝지만 예매 익일부터는 예매수수료가 환불되지 않는 점에 대해 기재되어 있고, 고객님께서 동의하고 예매한 점이라 수수료는 환불이 어렵다고 안내드렸다. 고객은 지금 취소를 해야 할 건이 1건 더 있는데 그러면 또 3천 원을 손해 보고 취소해야 하는 거냐며 잔뜩 흥분한 채로 물었고,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했다.


고객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내가 실수한 건 인정하는데..."라는 게 있다. 혹시 "실수한 건 인정하는데" 뒤에 "손해는 절대 못 봐"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고객은 3천 원 손해 보는 것은 그렇다 쳐도, 6천 원은 도저히 못 내겠다고 했다. 이미 취소한 티켓에 부과된 수수료를 환불해주거나, 지금 취소할 티켓을 전액 환불해달라고 했다. 요새는 예매할 때 취소 규정에 대해 꼼꼼히 확인하는 고객이 많고, 미처 확인하지 못했더라도 취소수수료가 부과되는 규정 자체민원을 제기하는 일은 드물다. 피치 못할 상황으로 관람을 못 하게 되었다거나 고객의 특별한 상황과 맞물려 수수료가 부과되는 점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은 여전히 있지만, 이 고객처럼 그냥 수수료를 환불해달라는 고객은 오랜만이었다.

고객의 상황에 공감하며 차분히 설명해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수수료를 환불해달라는 통화가 10분이 넘어가니 나도 짜증이 났다. 고객님과 같은 상황에 있었던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을 드리지 못했는데, 고객님만 수수료를 환불해드린다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문제가 되는 일이라고 안내했다. 고객은 대뜸 다른 사람 얘기는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나만 환불해주면 된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는 고객이었다. 상담원과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 고객센터 팀장부터 본사 담당자까지 모두 연락을 달라고 했다. 본사 담당자와는 통화가 어렵고, 상담원인 제가 담당자에게 고객님 상황을 전달해서 답변을 받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콜센터 안에서 나를 '소설가'라고 부르는 동료가 있다. 내가 본사 담당자에게 쓰는 메일이 구구절절을 넘어 어찌 보면 조금 구차해 보일 만큼 간곡하고 장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담당자에게 고객의 현재 상황, 고객이 한 말, 원하는 처리방안에 대해 상세히 메일을 썼고 오래지 않아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수수료 환불 불가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4 문장. 길게 쓴 나의 메일이 뻘쭘해지는 성의 없는 답이었지만, 속 시원했다. 이런 고객에게 수수료를 환불해준다면 다음에는 더 큰 진상이 되어 돌아올 거다.


말도 안 되는 민원을 거는 고객에게는 응대하는 내가 힘들어 그냥 고객이 원하는 바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이런 사람한테는 절대 해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고객에게 연락해서 한껏 풀 죽은 목소리로 본사 담당자에게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수수료 환불은 불가하다고 안내했다. 큰 금액은 아니라 이쯤 되면 수긍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고객은 뜬금없이 지금 생각해보니 취소할 때 취소수수료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취소수수료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면 취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수수료를 환불해놓으라고 했다. 지금까지 보고된 오류는 없으며, 취소할 때에는 수수료가 고지될 뿐만 아니라 고객님께서 취소수수료가 부과되는 점에 동의하셔야만 취소 가능함을 고객에게 안내했다. 고객은 나한테 오류가 있었는데 무슨 얘길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오류라고 하는데 어쩌겠나. 다시 담당자에게 확인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고객이 취소하는 과정에서 취소수수료가 안내되지 않은 오류가 있었는지 전산 담당자에게 확인 요청했다. 점심이 지나 답이 왔다. 고객의 취소 시 로그 기록을 전달해주며 취소수수료가 노출되지 않는 특정한 오류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고객에게 전화해서 오류는 없었음을 안내했다. 고객은 내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한 말투로, 갑자기 생각났는데 오후 11시 30분에 예매를 하고 나서 자정이 되기 전에 취소하려고 했는데 PC 홈페이지가 오류가 있어 취소를 못 했고, 조금 후에 다시 시도하느라 자정이 넘겨 수수료가 나왔다고 했다. 자꾸 말을 바꾸는 고객이 어이가 없었다. 고객도 나도 지금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쯤 되면 상담원을 괴롭혀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겠다는 심보였다. 길게 싸울 기력도 없어 담당 부서로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전산부서로 다시 고객의 주장을 전달했고, 답이 왔다. 별도의 오류는 확인되지 않으며 고객의 PC나 인터넷 환경상의 문제였을 수 있고, PC 웹으로 취소가 불가한 상황이라도 모바일 웹/앱 등의 다른 수단으로 충분히 취소할 수 있었으므로 수수료 환불은 불가하다는 답변이었다. 오전 9시에 받은 전화를 오후 5시까지 끌고 왔다. 또 말을 바꾸면 확인이고 뭐고 한바탕 할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전화를 했다.


그러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지만, 가끔 상담원과 고객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한 판 크게 싸우고 싶은 고객이 있다.


"담당 부서로 확인 시 ~~ 했으며, ~~ 했으므로 취소할 때 발생한 수수료 환불은 불가합니다. 도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감정 없이 전했다. 고객은 한숨을 푹 쉬며 "정말 융통성 없는 회사네요. 상담원도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객의 "고생했어요"라는 말에 나는 화가 났을까? 아니다. 나는 정말 고생했고, 어처구니없지만 내 고생을 알아준 고객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 조금의 찝찝함도 없이 개운하고 깔끔한 기분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담원을 괴롭혀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 고객의 명한 욕망이 순수하게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오래 일하며 내 감정을 읽어내는 기능이 손상되었나. 어쩌면 퇴사를 보름 앞둔 시점이라 마음이 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진상 고객의 '고생했다'는 한마디에도 감동할 만큼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던 걸까? 고생했다는 고객의 말에 여러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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