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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Dec 05. 2018

헤어질 때 깨닫게 되는 것들

[선배님 어려운 순간들에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퇴근을 조금 앞둔 시간에 사내 메신저로 이런 쪽지가 왔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퇴사하는 3개월 차 신입사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을 준 적이 없다. 혹시 모든 직원에게 보낸 전체 쪽지인가 하고 동료들에게 물었지만 아니었다. 나에게만 온 것이었다. 그녀와는 지나치며 했던 인사 외에는 개인적인 대화 한마디 한 적 없는 사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번의 간단한 물음에 답을 해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답장으로 고생 많으셨다고, 앞으로 하는 일 모두 잘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회사를 나왔다. 그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싫어했다. 그녀는 일을 잘 못 하는 편이었다. 나는 회사에서는 사람 좋은 선배인 척을 하기 때문에 앞에서는 친절하게 대했지만 돌아서서는 그녀에 대한 동료들의 뒷담화에 동참했고 한 번은 내가 먼저 그녀의 안 좋은 얘기를 꺼낸 적도 있었다. 나는 인격자인 척하는 위선자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을까.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던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처음은 항공사의 아웃소싱 업체에서 일했다. 일도 쉽고 재미있어 열심히 했다. 항공사 소속의 지점장님이 나를 좋게 봐줘서 추천 채용의 기회를 주었고, 운 좋게 합격해서 항공사 본사 소속으로 일하게 되었다. 내 사수는 일은 잘하지만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다. 성품이 좋지 않은 직장 후배의 뺨을 때려 가르친 일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일도 익숙하지 않은데 매일 사수에게 듣는 꾸지람은 견디기 힘들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까지 해서 다니게 된 회사라 무조건 버티고, 열심히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점점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려워졌다. 어느 날은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회사를 안 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사를 보고했다. 내 사수와, 그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일 잘한다고 지점에서 추천해서 뽑아줬더니 이렇게 금방 그만두느냐며.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하는 말이었다. 

퇴사 날이 되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며 야근하던 중에 사수가 퇴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로 가서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퇴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의 가장 앞쪽에 서 있던 그는 '너 블랙리스트야. 앞으로 우리 회사 비행기 타면 죽는다'는 말을 내게 하고 떠났다.

나는 냉정한 편이 못 된다. 그 말을 듣고 왜 마지막까지 저렇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까 하는 설움이 복받쳐서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 항공사의 비행기는 타본 적이 없다. 그 일은 트라우마가 되어 끈기 없는 놈, 나약하고 무능력한 놈이라는 아픈 말로 아직도 가끔 나를 찌른다. 작가를 준비한다며 일을 그만둔 그녀의 마지막 쪽지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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