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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Oct 17. 2018

콜센터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2년 전 퇴사한 선배가 재입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적당히 친했던 선배였지만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왜 굳이 다시 들어오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선배는 퇴사할 때 팀장과 얼굴을 붉히고 안 좋게 나간 사람이었다. (콜센터를 퇴사하는 사람들이 좋게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2년간 선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아있는 사람들이 죽어라고 욕을 하는 이 회사가 어쩌면 좋은 회사였던 걸까? 적어도 콜센터 중에서는 나쁜 곳은 아닌 건가? 올해 말에 퇴사한다고 동료들에게 떠벌리고 다녀서 소문이 다 났는데 뻔뻔하게 내년에도 여기를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선배가 돌아온다는 얘기에 별생각이 다 들었다.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항상 하지만 막상 그만두지는 못한다. 밖은 전쟁터일까 지옥일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5년쯤 다니니 싸우고 나간 사람, 질려서 나간 사람, 무단결근으로 나간 사람들이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몇 개월,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콜센터를 감히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다니는 콜센터의 인원을 보면 절반 정도는 5년, 심지어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들어온 지 몇 개월 안 된 신입 상담원들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독히 오래 남아있고 신입 상담원들은 대부분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오래 다닌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친하고 신입 상담원과는 벽을 둔다. 잘해줘 봤자 금방 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입 상담원들이 실수하는 것을 뒤치다꺼리하고, 그들에 비해 고품질의 상담을 하면서도 막상 월급은 똑같이 받는 것에 불만이 많다. 이런 경우 장기근속자에게 대접을 해주지 않는 회사에 불만 제기를 해야 하지만, 엉뚱한 신입 상담원들에게 불똥이 뛰는 경우가 많다. 신입 상담원들도 업무도 익숙지 않은데 선배 대접을 받으려는 오래된 상담원들 때문에 고충이 심할 것이다. 그래서 콜센터 후기를 보면 상담원들의 텃세가 심하다는 말이 항상 나온다.

일이 편하거나 급여가 많지도 않고, 오래 근무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없는 이곳을 우리는 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1년 조금 넘게 다녔을 때 이들이 매 맞는 남편, 매 맞는 아내와 같다고 느꼈다. 배우자의 폭력에 시달리다 보면 자신이 한없이 무가치한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폭력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콜센터도 마찬가지로 고의 폭언, 관리자들의 부당한 압박, 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자존감은 끝없이 낮아지고, 비난의 화살이 외부가 아닌 나 향하게 된다. 나는 이런 곳에서밖에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콜센터에 옭아맨다. 심지어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필사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를 포함해 오래 일한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중반~40대 초반의 나이다. 콜센터에 일하는 동안 나이는 들었는데 돈도, 기술도, 능력도 없어 새 출발을 하는 게 두렵다. 콜센터는 오래 다녀서 아는 사람도 많고 제법 선배 대접을 받는데, 다른 회사에 입사해서 신입 취급을 받으며 새로운 업무를 익히는 게 겁이 난다. 그래서 진상 고객에게 욕을 먹어도,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애써 모른척하며 그냥 다니는 거다. 상담원의 업무에 만족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사람? 서비스 업이 천직이라 상담스킬을 쌓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서 숙련된 상담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다른 곳은 몰라도 내가 다니는 콜센터에 그런 사람은 없다.


콜센터 안에 나를 가둬두고 나가지 못하게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좀 슬퍼졌다.


콜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봤던 오래된 선배들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생기도 의욕도 없고 그저 출근해서 전화받고 때 되면 퇴근하는 좀비 같았다. 속으로 은근히 그들을 깔보며 절대 저렇게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던 29살의 나는 어느새 34살이 되었다. 무기력의 결정체가 되었고 어제와 오늘, 내일이 똑같은 좀비가 되어버렸다. 사회나 콜센터의 탓만 하고 싶지 않다. 5년간 나를 발전시킬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신세 한탄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무기력이 나를 잠식하고 좀비로 만드는 것을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 5년간 무기력했던 만큼 에너지도 쓰지 않았으니 좋게 생각해 충전한 셈 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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