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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Oct 18. 2018

그럼에도 콜센터를 떠나는 사람들

콜센터에서의 이별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처음의 이별은 입사 동기였다. 내가 콜센터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남자 상담원이 별로 없었는데,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이 2명 다 남자라 다들 신기해했다. 2금융권에서 채권추심 일을 하던 친구였다. 나와 비슷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둘밖에 없는 동기라 서로 의지하며 한 달을 버텼다. 입사 한 달 후 나온 다음 달 스케줄표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근무가 들어있었다. 채용공고에는 주 5일 근무가 기본이나, 상황에 따라 한 달에 1~2번쯤 주말근무에 투입될 수 있다고 적혀있어서 우린 그런줄로 알았다. 처음의 채용공고와 근무조건이 달라졌어도 나는 주말에 할 일도 없고 돈도 벌 수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주말출근를 받아들였지만, 나보다 2살 어린 동기는 남들 노는 주말까지 나와서 욕먹는 일은 못 하겠다고 바로 그만뒀다.


밥 친구가 사라져 매일 혼자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지내던 중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순하게 생긴 남자 후배가 입사했다. 팀장도 나보고 잘 챙기라고 해서 몇 달 선배라고 콜 센터 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점심도 같이 먹으며 많이 친해졌다. 둘 다 조용한 성격에 대화도 잘 통해 퇴근하고 술 한잔 하는 친한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 생긴 것도 비슷해 보여 사람들이 형제 같다고도 얘기했지만, 분명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우유부단한 성격이어서 이해 안 되는 회사의 방침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는데,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소속된 용역업체나 고객사의 부당한 시스템을 납득하지 못했고, 팀장에게 불만 제기도 자주 했다. 결국 친했던 동생은 콜센터 안의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참지 못하고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마음 잘 맞는 친구가 떠나고 나서 얼마간은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메신저의 [퇴사] 그룹을 본다. 100명이 넘는 떠나간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그들을 떠올린다.


1년쯤 다니니 친한 동료도 많이 생기고 제법 선배가 되었다. 내가 다니는 콜센터는 워낙 작은 규모라 신입 상담원에게 이론 교육을 하는 강사는 있지만, 이론 교육 후 처음 전화를 받을 때 상담을 도와주며 일을 가르치는 직원은 없다. 그 일을 서포터라고 해서 숙련된 상담원에게 맡기는데, 신입 상담원 4~5명당 1년 이상 근무한 상담원 1명을 배정하여 전화받는 것을 도와주게 한다. 이 기간이 가장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 때다. 업무도 잘 모르고, 콜센터 전산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원 고객이라도 걸리면 못하겠다고 짐을 싸고 나가는 신입 상담원들이 많다. 오전에는 전화를 잘 받는 것 같았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아 확인해보면 말도 없이 집에 가버린 사람들도 가끔 있다. 신입 상담원에게 서포터가 붙어서 도와주는 기간은 3주 정도 되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빈자리가 늘어간다. 무사히 3주간 잘 따라준 신입사원들은 괜히 내가 키운 자식 같아서 괜히 마음이 가고 좀 더 잘해주지만, 그들도 역시 어느 순간 말도 없이 퇴사해버린다.

좋은 놈, 못된 놈, 똑똑한 놈, 이상한 놈 할 것 없이 다 나간다. 10명이 들어온다고 하면 6개월 다니는 사람은 1~2명도 안 된다. 회사가 시켜 억지로 떠맡게 된 서포터 업무지만, 신입 상담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안쓰럽고 정이 든다. 애쓰게 가르친 신입사원들이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버리는 게 처음에는 섭섭하고 괘씸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요새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다고 해도 관심도 없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나가도 그만이다. 괜히 신경 쓰고 잘해줬다가 말도 없는 퇴사에 상처 받는 것이 싫어 벽을 치게 된다.


이 회사는 상담원이 떠나는 것을 그저  퍼즐 조각 하나가 다른 조각으로 채워지는 것쯤으로 여긴다. 가끔 나도 모르게 그들의 논리에 동의하는 나를 볼 때 슬퍼진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퇴사한 동료가 있다. 3년 다녔는데 요새 들어 고객에게 짜증을 내고 일도 대충 처리하려 해서 관리자와 마찰이 많았다. 한계가 온 듯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3년이나 일했지만 떠나는 그녀를 위한 시간은 콜센터에는 없다. 근처 자리의 동료 몇몇이 다가가 퇴사를 축하하는 인사를 전하는 것이 전부다. 나도 마지막 콜이 굉장한 민원이 걸려 작별 인사도 못 했다. 월요일에 깨끗해진 자리를 보며 그제야 그녀의 퇴사를 알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익숙한 현실이다. 내가 떠나도 그녀의 경우와 같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다. 금세 다른 이가 내 자리를 채우고 나라는 존재는 까맣게 잊혀질 것을 안다. 떠나는 사람에게 배려도 예의도 없는 회사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퇴사를 앞두고 보니 그렇게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깨끗한 이별을 바라는 이유는 내가 이곳을 정말로 싫어해서일까. 그녀가 나가서 잘 되기를 비는 나의 마음은 선일까 위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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