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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Sep 07. 2022

턱걸이 입사

대학 졸업반이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 취직했다고 학교를 떠나갔다. 취업이 결정된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고 학점이나 메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군대 가기 전 방황하면서 학점관리를 제대로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어서 빨리 취직해야 지긋지긋한 알바도 끝내고, 빌린 학자금 대출도 갚고,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에게도 보탬이 될 수 있을 텐데. 마음은 조급해져 갔지만 원서를 내 봐도 다들 눈이 삐었는지 나를 선택하는 곳은 없었다. 상황도 안 좋은데 운도 안 따라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재능’이나 ‘자질’보다는 ‘노력’에 가까웠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 우등생도 아니었고, 남다른 감각이나 외모나 언변이나 관심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듯 애매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나마 하나 내세울 걸 찾자면 주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을 다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는 것. 하지만 그런 나의 성향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2003년 2월, 채용사이트에서 대한적십자사 직원 모집공고를 보았다. ‘어. 적십자도 사람을 뽑네.’ 고등학교 1학년 때 적십자에서 처음 헌혈을 했고, 대학생 때도 등록헌혈자로 주기적인 헌혈을 했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적십자가 어떤 조직인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료를 찾아보면서 어쩌면 이 회사가 나하고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째,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기관이라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남을 돕는 기관에서 일하는 데 월급도 준단다. 회사 FAQ에 “연봉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과 답변을 올려놨는데 8급 공무원 기준은 된다고 쓰여 있어서 이 정도면 괜찮겠다 생각했다. (당시 기준, 현재 다름)


둘째, 왠지 해외에 가 볼 기회가 많을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영어가 유행이라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들이 많았다. 마치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 같았다. 그렇지만 등록금에 월세에 생활비까지 충당하느라 아르바이트 하기에도 빠듯한 나에게 해외는 그림의 떡이었다. 적십자는 해외 구호활동도 많이 한다고 하니 들어가면 바깥 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셋째, 펀드레이저라는 일이 궁금했다. 당시 적십자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재단 등 모금단체가 많이 생겨나 활동하고 있었고, 기부시장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왕 일을 한다면 펀드레이징 일을 배워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사무직에 지원했다. 채용절차는 희망하는 지역 기관에 지원을 하고, 서울에서 시험을 보는 순서였다. 나는 일단 들어가 보자는 마음으로 청주에 있는 충북혈액원에 원서를 냈다. 대학을 다닌 곳이 청주였다.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에다 온라인으로 서류를 제출하지만, 그때는 작성한 원서를 가지고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제출했다. 제출하면서 담당자 책상을 보니 서류봉투가 제법 쌓여 있어서 경쟁률이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채용과정은 서류접수 – 필기시험 – 면접시험의 3단계였다. 서류를 제출하고 얼마 후 서울 마장동에 있는 서울지사 강당에서 필기시험을 봤다. 다행히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본사에서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다. 혈액원에서 1명만 뽑을 예정이기 때문에 면접 준비를 더없이 잘해야 했다. 자료를 달달 외우고 스피치 연습도 많이 했다. 면접 날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이 하는 질문에 긴장은 됐지만 최대한 준비한 답변을 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었다.


발표일에 초조한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진짜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쉬움이 컸다. 뭔가를 쉽게 얻어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또 그렇구나 싶었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나는 생계형이라 다른 회사에 취업 원서를 계속 썼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이천에 있는 한 기업 전략기획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 간 수습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일 년마다 돌아오는 예비군 동원훈련에 가기 위해 회사에 4일 간 휴가를 내고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적십자 인사팀장입니다. 포데로샤 씨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혹시 지금 어디서 일하고 계시는 중이신가요?”

 “네. 지금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에 적십자에 지원하셨잖아요. 앞에 합격해서 근무하던 직원이 퇴사를 했어요. 혹시 적십자에 와서 근무하실 수 있나요?”

 “(한번 튕기듯이) 아~ 고민이 되는데 내일까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내일 오전까지 꼭 연락 주세요.”


꿈에 가까워진다는 게 이런 것이던가.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가 4달 후에 나를 찾아왔다. 부모님과 급히 전화로 상의하고 적십자사에 가기로 결정했다. 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깐. 통화한 다음 날 오전 연락해서 가겠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아름답게 작별하는 것이었다. 동원훈련 동안 “뭐라고 팀장님께 말하지?” 계속 고민했다.


훈련을 마치고 회사에 다시 돌아간 첫날 Y팀장님께 회사를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혹시 퇴사하려는 이유가 궁금한데?”

“여기 들어오기 전 적십자사에 원서를 썼는데 동원 예비군 가기 전날 연락이 왔습니다.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라 퇴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잘 대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팀장님.”     


솔직하게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 회사도 나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고 선택해 준 고마운 회사였으니깐. 다른 이유도 아니고 꿈을 쫓아가겠다는 나의 말에 Y팀장님은 알겠다면서 가서도 잘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적십자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가 2003년 8월 1일이었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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