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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코리아나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by 포데로샤

2013년 11월 기상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 중 하나인 하이옌이 필리핀 중부지방을 관통했다. 얼마나 무시무시했냐면 최대시속 375km의 강풍과 6미터 높이의 해일을 동반한 초대형 태풍에 7000여 명이 넘는 필리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만 1600만 명이 발생했다. 가옥과 농경지가 초토화되었고, 도로, 전력, 수도 등 기반 및 의료시설 등이 마비되었다.


재난발생 직후 필리핀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대한적십자사는 이재민 구호를 위한 긴급구호자금 100만 스위스 프랑을 즉각 지원하였고, 내과, 외과, 산부인과, 심리사회적지지요원 등 17명으로 구성된 긴급의료단을 급파하였으며, 5인 가구용 응급구호품 1만 세트를 필리핀적십자사에 전달하였다.


현지에 파견된 긴급의료단은 일로일로주 북동쪽에 위치한 칼레스 시와 에스티아이 시에서 한 달간 의료활동을 펼쳤다. 피해는 컸지만 외부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 긴급의료단은 보건소 분만실과 장비들이 처참하게 파괴된 악조건 속에서도 현지 산모의 출산을 도와 2.4kg의 건강한 새 생명을 받아내는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소식지(2013년 겨울호)에 실린 필리핀 재난구호 활동 소식



하이옌이 터진 지 어느덧 4년이 흐른 2017년 11월 나는 필리핀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감사부서에 근무하는 동안 해외에 나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출장이었다.


하이옌이 발생하고 적십자사는 국내에서 기부모금 창구를 개설하였고, 기간 중 89억 원(물품 포함)의 기부금품이 모집되었다. 이 기부금품은 필리핀적십자사를 통한 양자지원,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한 다자지원 방식으로 긴급구호활동, 재건복구사업 등에 4년간 집행되었다.


나는 기금 집행이 현지에서 계획대로 되었는지 여부를 최종 모니터링하기 위해 주무부서인 재난구호팀 직원들, 같은 실 P팀장과 함께 필리핀을 가게 되었다.


짧은 일정에 장거리 이동이 많은 출장이었다. 2일 차에는 세부시티 산레미히오에 있는 이재민 임시거처를 방문하고 생계지원사업을 확인하였다. 3일 차에는 일로일로 주에 있는 파시지역재난통합센터와 파시지사(혈액센터 포함) 건설 추진상황을 점검하였다. 4일 차에는 칼레스의 의료, 교육지원 사업 현장을 살펴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4일 차를 앞두고 필리핀적십자사 직원이 "2013년 태풍 때 태어났던 그 아이 있잖아요. 그 아이 부모가 한국에 감사해 아이 이름을 코리아나라고 지었대요."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아이 이름에 코리아가 들어가다니.


우리는 4일 차에 칼레스 보건소를 살펴본 후 비눌루앙안 초등학교를 들른 다음 코리아나가 산다는 섬까지 이동해서 아이를 보고 오기로 했다. 당일은 바람도 있고, 파도도 거셌다. 하지만 또다시 와 볼 수 없는 길이다. 우리는 동력선을 타고 파도를 헤치며 30여분을 이동하여 코리아나가 산다는 투빅나녹섬에 도착했다. 동력선이 정박할 부두가 없어서 바다 위에 배를 멈추고 다시 노를 젓는 작은 배에 옮겨 타고 나서야 육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리아나의 집은 섬의 중턱에 있었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고 드디어 코리아나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주변으로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뭔 일인가 호기심에 모여들었다. 꼬맹이들은 주변 나무에 올라가거나 벽 뒤에 숨어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필리핀적십자사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 얘기를 하였고, 잠시 뒤에 코리아나가 엄마와 함께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우리는 코리아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니 다섯 살배기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겁이 났을까. 코리아나는 엄마 품에 안겨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먹이기만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코리아나의 엄마와 인터뷰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출장팀 6명은 각자 출장비에서 조금씩 거둬 코리아나를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고 헤어졌다.


긴급의료단의 손에 의해 태어나고, 4년이 지나서 점검단을 통해 다시 인연이 이어진 아이. 코리아나는 커가면서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알아갈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길 멀리서나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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