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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7. 2021

단관의 추억


주말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나는 가끔 혼자서 휴일 아침 조조할인 영화를 본다. 조조할인은 가격도 싸고 한가로워 좋다. ‘영화 관람은 홀로 감상이 최고다! 옆사람 방해받지 않고 몰입하기에도 좋고~’ 이 또한 아재 나이가 된 이후의 내 습관이다. 휴일 아침 일찍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에 간다. 시간을 확인한 후 쭉 늘어선 키오스크에서 상영관과 볼 영화, 상영 타임을 골라 좌석 티켓을 발급받는다.      


매장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영관 입구로 입장한다. 좌석은 ‘ 3관 K열 4번’ 상영관은 1관 ~ 8관까지 있고 특히 좌석 K열~G열, 4~5번은 이 극장에 이용할 때 주로 찾는 자리인데, 출입구 맨 뒤쪽 줄, 왼쪽 사이드 한가한 좌석으로 통한다.  평범하지만 무슨 표준 공식이라도 되는 듯 극장 영화 관람은 내 일상의 취미 중 하나이다.      



굿바이~! 서울극장


“아니, 극장 앞에 웬 줄이 이리 길지?,,,”     


무심코 지난 8월말 주말에 종로 3가 주변을 지나다 서울극장 앞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는데 극장 앞 광장에 수백 명이 줄을 서 있는 것이다. 아니 요즘 세상에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나? 티켓 발급 시스템이 고장 나 수작업으로 하는 건가? 뭔 일이래! 나의 호기심은 곧 풀렸다. 알고 보니 극장 측에서 무료 관람 티켓을 나눠주는 이벤트 행사였다. 


이유인즉슨 지난 1979년 개관한지 42년 만에 이번에  8월 31일 마지막 영업을 끝으로 폐업하는 서울극장이 이번 달 매일 1~2백 명씩 선착순으로 관객에게 무료 관람 행사를 하는 것이다. 이제 서울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년 전에도 이렇게 줄이 길었는데…” 대기줄에 선 나와 비슷한 또래의 회사원이 읊조린다. 그렇다. 서울극장은 1979년 세기극장으로 출발, 1989년에 국내 최초 복합상영관으로 재탄생했고 당시 최고의 인기 상영관이었다. 오늘은 무료티켓을 받기 위해 서는 줄이니 성격은 다르겠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선 감회가 새로울 터이다. 그래서 그런지 줄을 선 상당수가 제법 들어 보이는 중년들이다. 아마도 서울극장에 대한 옛 추억을 그리기 위함이리라.       


현재 극장업계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개 멀티플렉스 체인이 지배하다시피 하지만 서울극장은 개별 상영관으로 그래도 오래 버텨온 셈이다. 그동안 이들 대기업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관객을 빼앗긴 데다 코로나19는 이 극장의 운명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도 기억하겠지만 종로 3가는 서울, 단성사, 피카디리가 극장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고, 이 세 극장이 이웃처럼 몰려있던 종로 3가는 오랫동안 국내 영화 소비의 중심지이자 충무로와 더불어 한국 영화의 산실로 불렸다. 당연히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도 종로 3가는 젊은 세대와 영화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종로 3가의 골목골목은 영화 볼 때 챙기는 국민 필수 간식! 구운 오징어, 군밤 냄새로 가득하고 청춘 세대들의 데이트 1번지였다. 영화 관람 후 뒷골목에 늘어선 학사주점과 호프집이 다음 차에 들리는 행선지이고 그래서 종로 3가의 골목은 젊음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세월리 흘러 지금의 종로 3가는 금은보화, 보석을 거래하는 주얼리 특화거리로 성업 중이다.      


종로 3가의 사방면의 뒷골목은 그래서 신세대, 구세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과 가게들이 즐비한 서울 최고의 놀이터였다.          






극장에도 계급이 있다단관의 추억


우리나라 최초 복합상영관인 서울극장 이전 시대 극장은 단관(단일개봉관)이었는데 이를 기억하면 무조건 아재, 고모, 이모 세대라 하겠다. 서울시내 주요 극장은 당시 나름의 계급이 있었다. 단일 개봉관, 재(2차) 개봉관, 동시상영관의 체제였는데, 단일개봉관은 주로 사대문 안에 있었다.      


종로 3가의 세 극장을 필두로 국제, 대한, 명보, 국도, 중앙, 허리우드, 스카라, 아세아극장 등이 단일개봉관으로 경쟁하며 각자 이름값을 했다. 물론 선봉은 서울,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이 맨 앞 주자들이었다. 그중 단성사는 서편제로 한국 영화 최초 100만 관객 시대를 연 역사적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단일개봉관 100만 관객은 현재 1,000만 영화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흥행 성공을 뜻한다. 피카디리 극장 앞은 넓은 광장이 있어 청춘 세대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했다.       

  

당 시대를 경험한 아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학창 시절부터 나름 영화팬임을 자처했기에 해외 대작 영화가 개봉되면 자주 이들 단관을 찾았다, 스타워즈, 람보, 코만도, 터미네이터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성룡이 맹활약하던 시기 액션물과 홍콩 누아르의 대명사 주윤발, 장국영의 영웅본색 시리즈 등이 주 타깃이었다. 내 또래 아재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단일개봉관은 1 극장 1 스크린에 하루 5~6회 상영이 최대치였기에 그래서 대부분 좌석수가 컸다. 1, 2층으로 나누었고 개봉 후 1주 차 전회 매진이 되면 그 작품은 흥행 성공이 당연지사였고 극장 앞에는 매표소마다 긴 대기줄이, 감초처럼 나타나는 암표상과 단속 공무원들의 실갱이가 흔한 극장 앞 풍경이었다. 

       

사대문 안에는 몇 개의 재개봉관이 있었지만 대부분 개봉관에 밀려 그리 영업이 시원치 않았던 걸 기억한다. 재개봉관은 1차 개봉관에서 상영 종료한 작품을 재상영하기에 시차가 몇 개월  밀려 일단 여기서부터 한수 접고 들어가야 되는 셈이다. 이성 친구와 데이트할 때는 꼭 해선 안될 금기사항이다. 자존심 강한 이들이라면 더욱더!       


오히려 서울 중심을 벗어나 웬만한 지역마다 있는 소규모 동시상영관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하루에 2편~3편의 영화를 번갈아 상영하는데 한 번의 입장료만 내면 되니까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 있어도 되는 셈이었다. 가끔은 액션, 코미디, 성인 에로영화를 교차 상영하기에 성인들은 상관없지만 사춘기 청소년기에 이른 남학생들은 이 틈에 19금 성인영화를 몰래 감상하기도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동건, 유오성이 출연, 대박을 친 영화 ‘친구’에서 고등학생들이 단체 영화 관람을 하러 가 이웃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재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그 시절엔 흔한 장면이었다. 학생들 단체관람(이것도 줄여 흔히 ‘단관’이라 했다)은 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오후 일과를 채우는 것인데, 모든 학생들이 손꼽는 학창 시절 추억일 듯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단관에는 필수로 학교 지도 교사들이 총출동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청춘시절, 소중한 단관의 추억이다. 어찌 보면 그때가 훨씬 낭만적이라 할까? 지금은 이 막강한 멀티플렉스 극장체인도 코로나19에 치이고 OTT, 온라인 플랫폼에 밀려 고전하고 있으니 세월의 변화를 어쩌랴? 요즘 MZ세대들이 나중에 우리처럼 아재 세대가 되면 그들은 또 무얼 추억하고 그리워할까?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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