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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7. 2021

도시 로케이션 삼매경


영화 '기생충' 촬영지가 관광프로그램으로


우리 집은 고양시에 있다. 20여 년 전 고양시민이 된 후 여태까지 쭉~ 변화 없이 살고 있다. 한번 이곳에 자리를 잡으니 다시 서울로 나갈 일도 없지만 지금은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탓에 이사는 언감생김이다.      


서울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100만도시라지만 처음부터 시원시원하게 계획된 도시라 공원과 학교, 상업단지, 주거단지가 잘 정비되어 쾌적해서 살 만하다. 주변엔 서울시민도 부러워한다는 호수공원과 곳곳에 휴식할 만한 자연, 공원지가 많다. SBS, JTBC, MBC 등 방송사 제작 센터가 고양에 둥지를 틀고 있기에 호수공원이나 라페스타 등 문화거리에는 드라마 촬영이 많은 곳이다. 2~3년 후에는 방송영상미디어밸리까지 조성될 계획이니 고양시는 미디어시티의 미래 꿈을 한참 그리고 있는 중이다.      


2020년은 아카데미 4관왕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의 한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 기택(송강호) 가족이 거주하던 반 지하방이 폭우 속에 침수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마을 전체 세트장 촬영은 고양시 오금동에 위치한 수상 촬영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장면들이었다.      


‘기생충’의 영화 속 배경중 여러 곳이 아직도 기억된다. 그중 유명한 로케이션 장소를 중심으로 서울시가 워킹 관광코스까지 만들었는데 '자하문 터널 계단 코스' '우리 슈퍼 코스' '피자 시대 코스세 가지로 나뉜다

     

'자하문 터널 계단 코스'는 기택(송강호) 가족이 박사장(이선균) 가족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의 촬영지였던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터널을 중심으로 코스를 구성했다경복궁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오서점', 흥선대원군 별채 '석파정등 서울의 숨겨진 관광 명소를 소개한다석파정에서 시작해 자하문터널을 지나 효자동과 서촌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한 다음 경복궁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면 된다.
 
 '우리 슈퍼 코스'는 기우(최우식)가 민혁(박서준)에게 박사장 네 과외 아르바이트를 제안받는 장면을 촬영한 마포구 아현동 돼지 쌀 슈퍼부터 시작해 중림로서울로 7017,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 거리 '염천교 수제화 거리' 등으로 골목투어를 엮었다     


'피자 시대 코스'는 기택 가족들이 피자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동작구 노량진동 스카이피자를 중심으로 한강공원 및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엮었다외국인에게 서울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코스다.     


영화 촬영지뿐만 아니라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이용 가능한 명소유명 맛집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쇼핑몰 등을 코스로 소개해 취향과 일정에 따라 관광 코스를 직접 설계해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를 보면 잘 만든대박 친 영화 한 편이 흥행 외에도 도시 골목을 살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가 뜨면 마을, 동네도 뜬다


공유, 김고은이 출연한 대박 드라마 ‘도깨비’도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낳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소품은 곧 유행이 되고 로망이 되었다. 드라마 속 배경은 연인, 친구끼리 꼭 가봐야 하는 위시(wish) 리스트에 올라 몇몇 로케이션 장소는 느닷없는 외지 관광객의 방문 행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인천시내 곳곳이 등장하는데 송현 근린공원, 배다리 마을 헌책방 골목, 자유공원, 송도 국제도시, 청라호수공원등이 등장한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인천시는 관광객들을 위한 도깨비 관광코스도 신속히 마련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급증하는 방문객 탓에 지역 주민의 민원이 끊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드라마의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천 중구 금곡로에 위치한 배다리 마을 헌책방거리의 ‘한미서점’은 정점에 있는 곳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에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한동안 헌책방거리가 떠들썩했다. 다만 책방은 모름지기 책이 팔려야 하는데, 오는 이들마다 인증샷만 찍고 휑 가버리니 가게 주인이 이후론 ‘실내사진 촬영 금지’라는 팻말을 달기도 해 방문객이 조금 멀쓱해졌다.    

       

도시 골목만 골목이 아니다.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흥행에도 성공하고 로케이션 지는 관광지가 되었다. 싱글맘 동백(공효진)과 청년 경찰 용식(강하늘)이 열연하는 ‘동백꽃 필 무렵’은 포항시 구룡포의 작은 마을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는 ‘옹산’ 마을로 소개되고 간장게장이 유명한 곳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옹산 간장게장 거리’ 실체가 없지만 이곳을 찾아간 관광객은 먼저 이 거리를 찾는다. 조용한 마을 골목에 외지인이 찾아오니 이 또한 반갑지 아니한가?      

  

최근 드라마인 현실주의 치과의사(산 민아)와 만능 백수 홍반장(김선호)의 티키타카 힐링 로랜스를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갯마을 차차차’의 실제 촬영지는 공교롭게도 포항 남구 구룡포읍과 장기면 양포리, 북구 정하면 일대이고 주된 촬영지는 청하시장과 정진리 마을회관, 구룡포 해수욕장, 월포 해수욕장 등이다. 넷플릭스에도 방영되어 해외 한류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한적한 이곳에도 내외국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로케이션 매니저가 잘 나가는 가 보다. 어느 한 로케이션 매니저는 한 달 기름값으로 수맥만을 써가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말 그대로 이 잡듯이 쑤시고 다닌다고 한다. 작품 소재에 딱 맞아떨어지는 장소를 찾기 위해 자나 깨나 로케이션 헌팅이다.      

 

돌이켜보면 영화 속 로케이션지가 관광명소가 된 예는 많이 있다. 오래전이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의 군산 근대문화유산 골목의 ‘초원사진관’ 일대는 세월이 흘러도 이미 명성이 나 있는 곳이다. 영화 ‘친구’에서 등장하는 자갈치 시장과 부산 곳곳의 거리 골목,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꽃분이네 잡화점이 위치한 시장 골목은 숱한 화제를 낳았더랬다.     


그렇다고 영화 속 로케이션 장소가 꼭 좋은 결과를 낳은 것 민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주민과 갈등을 빚은 사례도 있다. 중국 교포 조직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범죄도시’, ‘청년 경찰’은 대림동과 가리봉동 중국인 거리가 배경인데 무시무시한 조직 깡패 소재를 신랄하게 표현해 영화 촬영 전후로 큰 논란을 낳았고, 연쇄살인마를 다룬 ‘추격자’의 영화 속 실제 촬영지가 아닌데도 망원동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바람에 주민들의 항의와 반발이 거셌다.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 대박을 올렸지만 지역 주민들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배경으로 당시 서민의 애환과 시대상을 고대로 재현한 듯한 감동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도 온 국민,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극 중 배경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으로 그려진다. 1~2층 단층집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 쌍문고등학교, 쌍문여고가 등장하는데 시청자 대부분은 드라마가 거의 종영될 시점까지 진짜 촬영지가 쌍문동인 줄 알고 이곳을 일부러 찾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촬영세트장은 의정부에 있는 세트장인데 말이다. 의정부시는 드라마 제작사에게 세트장 촬영 부지를 제공하고 행정 편의 등을 지원했지만 고스란히 혜택은 연관 없는 쌍문동으로 돌아갔다. 어찌했든 도봉구 쌍문동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시피 하니 말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대박 영화, 드라마의 로케이션 장소가 지역 관광에 엄청난 효과를 내자 지자체도 바빠졌다. 시, 군 단위 지자체는 실무팀까지 만들어 로케이션 유치를 위해 제작사에게 온갖 당근책을 제시하고 행정지원에 적극적이다. 지역 관광자원과 산업, 경제활성화를 위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야말로 골목 로케이션 전쟁시대이다. 모처럼 오늘은 감동적인 영화, 드라마 속 추억의 장면을 떠올리며 골목 삼매경에 빠져본다.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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