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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Dec 10. 2020

당근 없는 카레

사회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이 뭘까. 힘들고 어려운 점을 말하자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겠지만 그중 단연코 부동의 일위는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학생 때야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삼 년 동안 같은 반을 했었어도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친한 척'을 매우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인간관계에서 호불호가 확실한 나는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관계는 피상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 피상적 관계가 싫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소모적이며 귀찮고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좋은 면을 애써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둘러보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아니었다.


그들은 나에게 삶은 당근 같은 존재였다. 생 당근은 괜찮지만 당근을 삶으면 완전 맛이 없어지는 것처럼 아주 깊이 내려다보면 괜찮은 사람 일 수 있겠지만 슬쩍 봤을 때는 완전 별로인 사람들. 그들은 내 인생이라는 카레에서 쏙쏙 빼버리고 싶은 삶은 당근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카레에 당근 넣는 거 싫다고 말해도 엄마가 카레에서 당근을 빼주지 않는 것처럼 인생에 늘 좋은 사람들만 채워질 수는 없는 법이지. 슬프게도 그게 인생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하지 못해도 카레 정도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카레의 좋은 점은 적당히 대충 만들어도 맛있고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면 완전 다른 음식이 된다는 것이다. 근래에는 물 대신 코코넛 밀크를 넣어서 카레를 만들었는데 아주 이국적인 카레가 탄생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근사해서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코코넛 밀크를 넣었을 경우에는 밥보다 빵이 더 잘 어울린다. 특히 뚜레쥬르에서 파는 버터 식빵이 정말 잘 어울린다) 고기가 없는 날에는 야채로만 카레를 만들기도 했고 불고기용 돼지고기가 남아있으면 냉장고를 털어 야채를 넣고 카레를 만들었다. 애호박, 버섯, 감자, 돼지고기, 양파와 같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카레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소박하지만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한 끼.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인생은 어떤 기분일까. 그 인생은 당근이 빠진 카레와 같을까.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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