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위잉
적막한 방에 전자렌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전자렌지안에서 돌아가는 도시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화진은 생각에 잠겼다.
<독립서점 밤하늘>
확실히 불법적인 가게는 아닌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는데 착실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였다. 블로그에 방문 후기를 남긴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하나같이 주인장이 친절하고 좋은 책들이 많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이상한 사람이었어.”
화진은 뜨거워진 도시락을 조심스럽게 꺼내며 중얼거렸다. 다짜고짜 바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명함을 건네준 그 여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을 기계적으로 우물거리며 방금전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머리색이 굉장히 화려했지. 반짝이던 백금발 머리카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해서 화진은 한번도 원하는대로 염색을할 수 없었다. 탈색된 머리카락은 화진이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만 존재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런 스타일을 조금 동경하기도 했어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화진과 달리 대학에 들어간 고등학교 친구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파마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형형색색의 불꽃 같던 머리카락들을 자랑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화진이 경험 할 수 없었던 스무살의 생활들이 마치 보통의 삶 혹은 평범한 삶 처럼 느껴져 한없이 괴로웠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를 여행한다는 사치따위 바라지도 않았지만 행복해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볼 수록 자꾸만 마음이 쪼그라 들었다. 에펠탑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인가.
명함에는 이상한 여자의 이름이 써있었다.
“대표 방하늘”
소리내어 읽어본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본인 이름이 방하늘이라 서점 이름이 밤하늘인가 싶었다. 화진이었다면 절대로 가게 이름을 본명으로 짓지 않았을 것 이다. 이름을 내걸고 무엇인가를 하기란 두렵고 조심스럽기 마련이니까.
서점을 마지막으로 언제 가봤지. 고등학생 때 문제집을 사러 갔던게 마직막 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에서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서점과 친해질 일이 쉽사리 있지 않았다. 몇년 전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몇번 둘러보긴 했었는데 조금 보다 금방 자리를 뜨곤했다.
어떻게 내 몸속에 바늘이 있다는걸 알았을까. 화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처음보는 누군가의 몸에 바늘이 있다고 누가 예상 할 수 있겠는가. 혹시 병원 관계자였을까 의심하다가 화진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화려한 머리색을 병원에서 봤다면 기억하지 못했을리가 없다. 행여 병원 관계자라도 화진의 뒷모습만 보고 화진을 알아 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여자는 평생 바늘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화진 말고도 다른 사람들 또한 바늘이 몸속에 어느날 갑자기 들어오게 된걸까? 그리고 그 이상한 여자는 그걸 알아 볼 수 있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각에 화진은 기가찼다. 어린이도 아니고 동화나 만화에서 나올법한 상상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생각 할 수록 이상한 궁금증이 자꾸 커져만 갔다. 이 질문에 대답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 인데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화진은 핸드폰을 꺼내 서점의 위치를 확인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냥 서점이 어디 있는지 확인만 하는거라며 합리화를 했지만 화진의 마음은 벌써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