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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자기 참고의 기술


시간이 쌓였다고 생각되면 내가 쓴 글을 찾아 읽는 습관이 있다. 어떻게 일상이 흘러갔는지 되돌아보고 소중한 추억들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본가 방문, 가족 여행, 친구와의 여행, 특별했던 수술, 선생님들과 특별했던 하루, 친구와의 만남 등이 적혀있다. 책에서 읽은 문장으로만 채운 날도 있고, 너무 힘이 들어 오랫동안 텅 비어있는 주간도 눈에 띈다. 기록의 힘은 크다. 건져 올리고 싶은 몇 마디 문장이, 그 때도 나를 채워주고 북돋워주었던 그 문장이 오늘도 살아서 나에게 다가온다.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뭔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주변 환경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사람에 따라 반응도 달리 해야한다.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고 패턴을 분석하여 내게 맞는 반응 양식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일단은 세세한 부분도 기록하여 데이터화한다. 언젠가 내가 적절한 순간에 과거의 나의 지혜를 빌어 이겨낼 수 있도록.


가끔 블로그에 댓글이 달린다. ‘힘든 순간에 선생님 글을 보고 위로와 공감을 많이 얻고 갔어요.’ 시간이 지나 글에 담긴 마음과 태도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떤 점에서 통할 수 있었던 걸까. 가끔씩 한 번 더 내가 쓴 글을 읽어본다. 아, 이 때 나는 참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보다도 성숙하면서 열린 시각, 세상에 대한 도전 정신,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과거의 나에게서 배운다.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일생동안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어떤 정신적 기질은 고점을 찍는 시기가 따로 있을 지 모른다. 어릴 때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의 즐거움이, 젊을 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성취가 주는 희열이 더 크게 와닿듯이. 그 때 글로 남긴 내 생각은 내 정신적 기질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실존적 불안과 맞서고, 지나가는 세월을 받아들인다. 건강한 마음의 명예의 전당 같은 그 곳에서, 나는 나를 읽고 나를 통해 세상을 더 크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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