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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때론 적당히 해내더라도 만족하기

일을 하며 자존감을 유지하는 방법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유재석은 "내가 몰두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습득해야 된다. 한 분야 만큼은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해야 한다"며 데뷔 초 겪은 카메라 울렁증을 털어놨다. 이어 경험을 통해 극복했다며 강조했다.


2021.5.22 프로그램 컴백홈에서 : https://news.v.daum.net/v/20210523001650765?s=print_news



한 프로그램에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질문에 유재석 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몰두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습득하여 내 전문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

일을 제대로 제때 습득하지 못하면 자괴감이 든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로서 느껴지고 나의 능력과 적성에 의심이 든다. 직장에서도 동료, 상사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겪게 되니 위축되고 소심해지며 우울해진다. 이때 스스로 박차고 일어날 회복 탄력성이 있거나 적절한 위로와 지지를 제공하는 환경이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일에 대한 성공 경험과 만족감’을 느끼는 당사자는 본인이기에, 본인이 일을 잘 하여 만족할 수 있도록 가장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에 더해 ‘적당히 할 줄 아는 것에 만족하는 자세’도 도움이 되었다. 타고난 특유의 기억력이나 학습능력, 창의력이 없는 보통의 지능을 타고 난 나에게 ‘완벽’은 요원한 일이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에도 당시에는 집중하여 노력하지만 결과를 보면 허점이 있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반복하여 되돌아보고, 실수를 확인하여 이 가능성을 줄이고 지속된 수정을 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뇌의 확장성과 가능성은 무한하다지만, 일상적으로 의식하고 행동하여 제때 기억에서 꺼내 사용하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를 느낀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주의 집중력과 기억력의 한계를 알기에 나에게는 ‘적당히’라는 내적 기준과 자기 만족감이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준다.



수술방에서 어떤 수술들은 한 달에 한 두번,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행해진다. 최근에도 어떤 수술을 하면서 오랜만에 morcellator를 조립하여 쓸 일이 있었는데, 조립을 반쯤하다가 나머지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분해된 조립 기구를 보면 당연히 할 줄 안다고 생각하여 수술 노트에 세부 조립법을 기록해둔 것도 없었고, 나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해 수술 전에 한번 더 확인할 생각을 못했었다. 이전에 해왔고 당연히 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수술실에서 조립하여 사용하는 특정 기구 장치들은 사용법과 조립 순서 가이드라인이 있어 안 써 본 기구를 다룰 때는 인계를 받는다. 하지만 일부는 공통의 규칙이 있어서 구조를 확인하고 만져보다 보면 응용 가능하다. 어떤 경우는 A-A’, B-B’ 식으로 아귀가 맞게 생겨서 잘 모르더라도 이리저리 조립하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구의 모든 내관과 고무링까지 멸균 증기가 통과하도록 가능한 단위까지 분해하여 멸균의뢰를 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구조로 이루어지고 에너지를 연결해 쓰는 수술 기구들은 조립법이 상당히 까다롭다. 스크럽은 수술이 시작되면 계속 수술 필드를 바라보며 수술 흐름을 따라가며 지원해줘야 하기 때문에, 미리 기구 조립과 관리법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낯선 수술 기구를 만날 때는 멸균 의뢰할 때라도 한번 더 만져서 조립과 분해를 연습해보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긴다.



이번에 날 난감하게 한 기구는, 이상하게도 A와 B의 직경이 똑같아 호환이 되어서 기억 상에서 혼동을 불러왔다. 이렇게 끼우면 안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니까, 내 기억에서 낯선 느낌이 드는데 이게 맞나 싶고. 이상하게 또 이렇게 작동은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결국 순회간호사 선생님께 한번 더 확인해서 제대로 조립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진땀을 빼고, 수술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노트에 헷갈린 부분을 강조하여 적어둔다.



기계처럼, 천재처럼 경험한 것은 모두 기억하고 바로 응용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술실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주의집중하고 학습해야 할 일의 연속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습득하며 일한다. 그만큼 지식과 정보의 양이 많기에 스스로도 융통성있는 기대를 가진다. 대신에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동료들을 당황시키거나 피해를 주지는 않을 정도의 기본은 늘 놓치지 않도록 살아간다. 100점 만점의 간호사는 아니더라도, 노력하고 책임지려는 자세에는 늘 스스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이번에 일하는 방이 수술 진료과와 수술 종류가 매번 달라지는 공용 방이라서 기억하고 새로 익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퇴근하고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안 잘 수가 없다. 그렇게 재충전을 조금 하고는 집중력도 체력도 흐리멍덩해서 휴대폰만 보곤 한다. 책을 읽어도 졸거나 집중이 잘 안 되고, 집안일은 늘 조금은 미뤄져 있고. 이전에 방장을 하면 다음날 수술 관련 검사 결과와 의무 기록을 미리 확인하여 예외사항까지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에서 내적 성취감을 느꼈던 나지만, 스스로 잘 돌보지 아니하여 혹은 업무 가중의 연속으로 피로감이 쌓일 때는 조금 달라진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욕심을 놓곤 하는 것이다. 



향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꼭 해야할 것, 숙지해야 할 것은 해내고 싶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구나 싶은 정도로. 100점짜리 직업인으로 살겠다는(혹은 살 수 있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은 지 오래다. 다만 귀찮고 지치고 힘들어도, 조금 더 준비를 하면 스스로도 더 만족스러운 자신을 마주하니까. 나를 더 좋아하려면 때로 흐려진 정신도 목덜미를 꽉 붙잡고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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