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할 수는 있는데, 기억은 잘 못해

by 간호사K

나는 기억력이 제법, 나쁜 편이다.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들의 세심한 디테일을 기억하는 것에도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만난 친구의 생일, 데이트할 때 들은 남자친구의 식성 이야기(뭘 못 먹고 뭘 좋아하고)같은 정성과 관련된 부분들. 대화의 소재로 직접 말을 하고 듣는게 반복되면 그래도 기억하는 편인데 그 외에는 학습 능력이 굉장히 약하다. 그래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고 그 즈음되면 한번씩 확인까지 해봐야한다.



얼마전에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내가 씻고 있을 거라고 현관문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하고 알려주었는데 친구가 결국은 초인종을 눌렀다. 알고보니 친구가 내 생일을 잘못 기억한 거다. 보안알람만 울리겠지 걱정되어 초인종을 눌렀나보다.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웃었다. '나는 너를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이런 디테일에 약해서 얼마든지 공감을 하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기억해달라, 그래도 생일이니까.'



얼마 전에, 잠깐 동기의 식사교대를 해주는 김에 이것 저것 할 수 있는 써큐의 일들을 다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반복을 통해 학습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 갑자기 낯선 것을 하면 빈틈이 생기는 편이다. 그것도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완벽하지 못할 수 있었기에, 돌아온 동기에게 "내가 이거 오랜만에 해서, 꼭 한번씩 확인 더 해보고 해."하고 인계를 주었더니, "응~. 네가 했는데 맞겠지~. 네가 하면 다 맞아."하며 씩 웃는다. 얘가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구나, 나도 덩달아 웃어주었다.



기본적으로 그래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해야 할 일, 중요한 일정, 수술 중 알게 된 디테일과 변경된 인계 사항 같은 것들은 꼭꼭 적어두어야 한다. 이런 내가 무사히 학창시절을 마치고, 간호사 면허증을 따고 어느 정도 학습능력을 지속하며 일을 하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 학습법, 기억력에 관한 책도 읽으며 연구를 했는데도 (기억의 성, 카드 암기법, 기억 곡선에 따른 학습 등),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정보가 점점 늘어나기만 해서 내 뇌는 늘 가득 차있는가보다.



기억력은 정확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하여, 기억을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꺼내는 능력이 아닐까. 세상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한 번에 자극이 너무 많아서 뇌가 예민하게 느껴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능력이 부족하여, 오늘의 감정과 생각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언젠가는 내 머릿속보다 블로그가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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