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기의, 한계 : 태움과 역태움을 경계하며

수술실 간호사의 태움과 역태움

by 간호사K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소설가 김영하, 엄지혜 작가의 <<쓰기의 말들>>에서 재인용


글은 흔히 퇴고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감정과 생각을 뱉어내고 쏟아내고, 하나씩 주워담으며 다듬는 것이다. 어우러지지 않는 조각들은 버려내고, 사이에 모래를 끼워 매끄럽게 만져주고. 잎맥을 봤다가 전체 수형을 봤다가, 누구보다도 제 글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 글쓴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고치다가 그만하는 때가 온다. 온전히 마음에 든다거나 완벽해서가 아니고 더 이상 손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나의 최대치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비슷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분위기를 익히며 원활히 학습하는 친구들이 있다. 반면에, 핑계대고 변명하고 기억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거나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각이 들어, 오히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역태움'의 상황. 이건 태도의 문제인지, 그 사람의 배움의 한계인 건지 잘 모르겠다. 간호대학이라는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채용 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들어온 사람이라지만 개인의 기질과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기업별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 채용틀 안에서의 변주는, 채용 기준을 의심하게 하기도 하는 것처럼.


각자는 개성에 따른 특장점이 있다. 순발력과 적응력이 좋거나. 꼼꼼하고 세심하거나, 반응이 빠르거나 암기력이 좋거나. 친화력이 좋거나, 조용하더라도 주변 사람을 편하게 만들 수 있다. 직무에 있어서는, 이에 필요한 요건들이 몇 개 있지만 이는 각자의 속도와 노력으로 습득해가게 된다. 수술 공부를 할 때에도 체계적인 정리가 좋다면 본인만의 노트를 만들어가며, 직접 배우는 게 좋다면 일찍 혹은 늦게까지 필드를 관찰하며 함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학습하면서 적응력있게 수술하는 사람도 있고, 제 환경을 만들면서 자기만의 수술 상차림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에게 맞는 노력의 시기를 거쳐 한 계단 도약하면, 그때서야 '1인분의 몫을 해내는구나' 인정받는다.


그렇지만 입사하고 1년이 넘어서도 실수가 잦아 주변에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는 친구를 보면서 '그 친구의 노력 혹은 능력 한계인 걸까?' 생각이 든다. 김영하 작가의 말 대로,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걸까?


개선하여 더 나아질 요소들에 대하여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안 주는 사람도 있다. 미움받는 행동은 경계해서 같이 잘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해주기도, 상처가 되서 더 주눅들까봐하는 걱정의 마음에 조용히 덮어주기도 한다. 문득, 어쩌면 그 친구의 한계치를 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 환경을 바라보고, 지식을 습득하고 적용하고, 몸으로 행하고 말로 풀어내는 것에 있어서의 한계. 직무 능력에 있어서 발전하고 있는지, 자신이 자기 능력을 어떻게 생각할지 주변에서는 알아채기가 어렵다.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리 주변에서 "이런 부분으로 사고가 일어나고, 이런 부분이 동료를 힘들게 하니까 이렇게 해보면 어떠니?"라고 이야기하여도, 성인을 바꾸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좌절스럽지만, 그런 것 같다. 보고 듣고 자란 경험의 탓에, 학습 능력과 속도의 탓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리 동료들이 속이 타도 바꾸어지는 건 없을 지 모른다. 혼을 내도, 혼을 안 내도 바꾸어지는 건 없을 지 모른다. 어떤 자극과 경험과 배움의 순간들이 쌓이지 않는 이상,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의 그 시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응원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든 생각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 애쓰다가 혼자 속이 무너져 내릴까봐, 속에 열불날까봐 미리 소화제를 살짝 뿌려두며 쓰는 글이다.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그저 이 사람이 그만두거나, 언젠가는 모르지만 나아지는 때가 오거나 할 것이다. 같이 일하면서 사고를 예방하고 가르쳐주며 시간과 에너지를 곱절로 빼앗기더라도, 아쉽지만 아무도 알아줄 수 없는 나만의 노고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거의 드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조금 덜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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