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연속, 선순환
“수술실 사람들은 보고 있으면 뭔가 배우는 걸 즐기는 것 같아.
어차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업이기도 하고. 너도 그렇지 않니?”
평온해 보이는 수술방이지만, 머릿속은 항상 깨어있다. 수술실 간호사는 배우고 익힐 것이 계속해서 샘솟는 샘이 깊은 물처럼, 항상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익혀야 한다. 진료과의 요청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인계를 주고 받고, 새로운 약품과 소작 및 지혈 장비를 끊임없이 마주한다.
병원에 따라 수술방 트레이닝에는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특정한 과의 주요 수술을 진행하는 수술방에서 훈련받는 것을 ‘수술방을 돈다’고 표현한다. 수술방마다 요일별로 집도의 배정표가 있어서, 정규 수술의 경우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변주로 수술 일정이 잡힌다. 그래서 방에 속해 일하게 되면서 그 변주 속에서 해당하는 진료과와 교수진의 수술을 배우는 것이다. 수술방을 매 달 혹은 몇 달 마다 도는 경우가 많고, 대형 병원일수록 진료과로 구분해 그 진료과 소속 수술방을 도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경우에는 메이저 과의 경우(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심장혈관외과 등) 교수진도 수술의 종류도 다양해 그 과의 모든 수술을 하려면 최소 1~2년의 트레이닝 기간이 걸려서 메이저 과에 속하게 되면 오래도록 그 과에 있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술 배정이 적은 마이너 과(이비인후과, 흉부외과, 하이브리드, 비뇨의학과, 치과 등)는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 정도의 주기로 트레이닝을 받고 과를 옮긴다.
그래서 정말 연차가 높으신 선생님들이라고 해도 진료과별 지식이 다르다. 메이저 과를 몇 군데만 도신 분도 있으시고, 마이너 과의 대부분을 아우르다싶이 한 분도 있으시다. 이러한 이유로, 수술실 간호사는 저연차든 고연차든 자신이 속해있거나 속하게 될 수술방/진료과의 수술을 항상 공부하고 지원하는 업무 패턴이 반복된다. 다른 과의 수술이 넘어오면, 내가 연차가 높아도 모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술의 준비(수술 재료와 기구 준비, 장비 조립 및 작동법, 방 셋팅법 등)부터 진행, 마무리(수술재료 청구, 약물 오더 수행 등)를 인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정규 수술의 트레이닝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인력이 적은 주말과 공휴일, 나이트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의 자주 뜨는 응급 수술을 미리 공부해간다. 응급 수술 교육 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최신 인계 사항은 반영되지 못하기에, 다른 과의 순회간호사 업무를 보면서 달라진 내용이 있으면 기록해두고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변함이 없지만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과 재료,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술 스타일도 계속해서 변한다. 그래서 예전에 했던 수술이라하더라도 오랜만에 접하면 주요 수술 과정이나 진료 재료를 한번 더 확인해야 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제 스타일에 맞지 않아 ‘옛날 스타일’ ‘옛날 사람’이라는 진료과의 컴플레인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경험은 과제와 내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실에 좀 익숙해지는가 싶으면, 과 혹은 방을 로테이션한다. 그러면 또다시 사람, 수술 해부학, 수술 기구와 재료, 장비, 셋팅을 새로 익혀야 한다. 그리고 또 익숙해지면 또 옮기고 또 옮기고. 안 옮기길 바란다면 특정 분야의 전문 병원에 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어떤 교수님의 어시스트만 서는 전담간호사로 들어가거나. 진료과 별로 의사와 수술장 분위기도 다르고, 장시간 무거운 기구를 계속 다룬다든지 저체온환경에 오래 노출된다든지 방사선에 계속 피폭된다든지 비상대기근무가 너무 잦다든지 하는 등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수술실 간호사에게 로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과에서는 삶의 질이 괜찮더라도, 언제든지 내가 속한 과와 방이 변하면 삶의 수준도 달라질 위험 부담이 있긴 하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은 어떻게 채워지는 걸까? 가끔 나는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또 가끔은 모두가 기피하는 과에 가게 될까봐, 연차가 쌓여도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다.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언젠가 계속해서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이런 불안을 안는다는 한계에
스스로 잠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