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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처음’에 부딪치며 일의 담력 키우기

수술실 전처치실과 입구 업무


하루 종일 긴장하며 일한 날은 퇴근길에 마음이 허전하다. 꼭 이렇게 아등바등 긴장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매일 이런 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빈도를 가지고 긴장감이 요동친다. 연차가 쌓여도 운이 좋으면 처음 혹은 응급의 경험을 최소화하며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대하는 일은 지속적인 긴장감과 책임감, 꾸준한 주의 집중력과 공부를 요구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면 평생토록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내 행동에 대한 뿌듯함과 긴장감 속에서 일할테지.


일의 담력에 대해 생각했다. 담력의 정의는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이다. 배우지 못한 것과 해보지 않은 것에 겁내지 않고, 내 지식과 술기에 자신있기 위해서 관심이 필요한 시간과 나의 성장 속도에 대한 인정이 담력을 키워줄 것이다. 최근에 이브닝 근무 때 수술실 입구 업무를 보는 일이 왜 힘들었나 생각해봤다. 



수술장 전처치실의 수술실 간호사는 병동에서 환자가 오면 수술 전 상태확인 절차에 따라 환자가 잘 준비해서 내려왔는지, 알레르기 여부, 렌즈, 틀니, 보청기나 속옷 등 소지품 관련 특이사항은 없는지, 수술방에 인계할 약품과 재료 등이 있는지, 금식은 잘 지켰는지, 수술명과 동의서 그리고 수술부위 표시가 정확히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수술방 상황을 보면서 환자를 안내한다. 수술장 입구 간호사는 수술장 내외부에 보호자 설명, 중환자실 퇴실, 각종 CPR 상황이나 화재 경보 등 안내 방송을 시행하며, 전체적인 수술실 근무자와 수술 관련 데이터를 수정,보완한다. 공조와 기계 장비, 환경 점검과 수리 진행 과정을 책임지며, 업체 기구와 수술 재료 배송 안내, 병동 및 중환자실과의 의사소통과 물품 차용 등을 수행하며 다음 듀티 간호사에게 전체 수술장 특이사항에 대한 인계를 주어 수술실이 24시간 돌아가게 만든다.



데이 근무 때는 정규 수술이 많아서 수술실 입구 선생님과 전처치실 선생님이 따로 계시지만 이브닝 인계 시간부터는 한 명이 입구, 전처치실 업무를 통합하여 수행한다. 우리 병원은 1, 2동의 두 건물이 수술실 내부 통로를 통해 연결된 구조라 하나의 수술실로 기능한다. 1, 2동 입구는 각각 수술실 가장 바깥 출입구에 떨어져 환자가 각 건물에서 입퇴실할 수 있는 구조다. 1동 입구의 경우는 이브닝 차지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수술과 인력 흐름을 알고 가끔 조언도 구할 수 있지만, 2동 입구의 경우 시시때때로 EMR을 확인해가면서 응급 수술 환자가 붙는지 혼자 알아내고 준비해야 한다. 


이브닝 근무부터 입구는 수술실 전체 유지보수 관리와 출입과 감염 통제, 내외부고객 안내, 전반적인 수술실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하여 나이트에게 인계주는 역할이라 고연차 선생님을 우선 배정하곤 했다. 그러나 때때로 데이번 입구 선생님들의 오버타임 교대 시간과 내 식사 시간이 맞아서,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수술 순회간호사로 고연차 선생님이 필요해서 연차 높은 분들 두고 입구 업무를 보곤 했다. 물론 무엇이든 해봐야 아는 것들이고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인계 자료도 거의 없으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수행할 일들이 많을 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수술방 안의 일과 밖의 일은 또 달라서, 입구 일을 하다보면 경험해보지 못한 '처음'이 너무 많다. 당장 옆에서 의견을 나누거나 가이드를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일하면서, 일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점이 종종 버거웠다.



입구에서 벨이 울렸다. 환자분 예상 수술 시간이 4시간인데 6시간이 지나도 안 나온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걱정하는 보호자가 궁금해 벨을 누른 것이다. 수술간호기록과 수술방 천장의 CCTV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봐도 아직 교수님이 수술을 한참 진행 중이라 수술방에 전화를 건다. 분위기가 험악한 방이라 조심스레 전화해서 물어보지만 순회간호사 선생님이 보기에도 아직 수술이 많이 남았다고, 정확히 물어 볼 만한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한다. 수술실 출입구로 환자분에게 직접 상황 설명을 하고 진심을 담아 공감을 전하지만,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 안쓰러움도 잠시 뿐. 다시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감정을 누르고 다른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수술실에서 집도의가 나온다. 집도의가 수술 진행상황을 설명할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수술실 입구로 보호자를 안내하고, 자동문 입출입을 도와준다. 어떤 경우는 안내 방송도 하고, 병동에 보호자가 있는지 문의 전화도 해보지만 보호자가 감감무소식이다. EMR을 통해 보호자 번호를 알아내고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안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응급 수술이 붙고, 환자 확인을 하고, 필요한 내용은 수술방에 인계한다. 동시에 환자가 여러 명 몰려오거나 업체가 보낸 퀵 배송이 도착하는 일도 잦다. 



동의서도, 항생제 오더도 안 낸 응급 환자를 수술실 입구로 의사가 끌고 들어온다. 진료과에게 동의서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침에 맞게 잘 작성했는지 확인하고, 오더도 재확인한다. 그 와중에 병동에서 약을 제대로 못 보내 중간에 수술방에 전달하고, 수술 후 기록되지 않은 욕창 환자가 발생했다며 병동에서 온 전화에 수술방과 의사소통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중환자실 환자는 급하다며 마취과와 의사가 그대로 수술방에 끌고 들어가면, 나는 입구 일을 하다가 수술방까지 쫓아가 수술방 간호사에게 환자 모자와 라벨을 전하고 수술 전 상태확인을 하거나 방 간호사에게 인계를 준다. 


장,단기로 방문한 외부인 출입 관리도 하고, 배송 온 수술재료와 수술 기구도 해당 과에 맞게 정리하여 수술방으로 배달하거나 멸균 의뢰한다. 입구로 냉동,냉장 약품이 올라왔는지 확인하고 정리한다. 1동 업무 수기 점검표에 사인을 하고, 방문객 카드키와 열쇠 카운트를 하고, 전체 인계를 총괄하는 2동에 1동 공지사항과 시간외근무자 파일을 보내며 인계를 준다. 나이트 출근자에게 입구 인계 사항을 따로 전해주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나이트 차지 폰으로 전화를 모두 돌리고야 일이 끝났다.


이렇게 적으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처음인 일들 - 처음 접하는 수술명도 익혀가며 정확한 수술명과 수술 부위 표시 점검,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수술실 진료재료와 기구, 장비를 빌릴 때 차용증 작성, 의사에게 불완전한 동의서 추가 서식 작성 안내, 심장혈관외과나 정형외과 체내 삽입물 배송분 전달-도 다 해냈다. 긴장감과 걱정에 기분 나쁜 아드레날린이 체내에 흐르는 걸 느끼면서. 모르는 건 실수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공손하게 물어봐가면서 확인했고, 부족하나마 수술방 간호사와 나이트 간호사에게 인계도 빠지지 않고 줬다. 내가 교육받고 간접 경험으로 배운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다. 가르쳐 주지 않아 모르는 걸 물어보고 확인해가며 하는 게 부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내 젊음, 청춘을 쏟는 병원에서 나는 수없이 커졌다 작아지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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