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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1인분의 간호사’라는 말

한 사람의 지적 공백은 다른 사람이 그만큼 집중하고 신경쓰며 채워야한다



1인분의 몫을 해내는 수술실 간호사가 되겠습니다.


2개월의 인턴 간호사 기간이 끝나고, 발령 소감을 발표하면서 내가 했던 이야기다. 



‘정말 딱 한 사람의 몫만이라도 하고 싶다.’ 개인이 해야 할 역할을 명확히 깨닫고 정확히 수행하여,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지의 표현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도,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식 임용된 신규간호사가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배워서 1인분 이상을 해내는 간호사로 성장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애달복달하는가. 



수술방의 트레이닝 기준은 병원마다 다르다. 몇 달마다 방을 돌면서 전체 과를 먼저 트레이닝 시키는 병원이 있는가하면, 우리 병원은 수술방 내에서 진료과 별 소속으로 로테이션을 한다. 외과방 간호사가 정형외과방으로 간다면 -외과 수술을 계속하는 수술방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하는 수술방으로 간다면-, 해부학과 기구, 장비, 임플란트, 특수 진료재료의 특성과 사용법을 새로 공부해야 한다. 이는 수술의 바탕이자 기초일 뿐이고, 수술의 프로시져를 교수님별 특성에 맞추어 따라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로테이션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자세는 각양각색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수술의 흐름을 더 빨리 익히고 수월히 적응하기 위해 욕심을 내는 선생님들이 있다. 반면에, 당장 수술에 참여하기에 부족한 교육생 입장임에도 오늘 경험할 수술에 대한 선행 학습조차 해오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정시 출퇴근 간호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근무 시간 30분 전에 EMR 로그인이 안 되도록 시스템 상으로 막아두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리 와서 인계를 받고 성실히 공부하길 바라는 시간에 대한 선임들의 기대는 좀 완화된 편이다. 그렇지만, 교육 자료가 없더라도 선행 학습과 인계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거 인계 자료나 동기들을 통해서라도 지식과 기술의 갭을 미리 따라잡으면, 교육제공자나 교육대상자 모두가 편하다. 제 시간에 출근해서 스크럽 혹은 써큐로 교육받으며 수술에 참여할 때 선행 학습이 없으면 보이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흐름으로 수술이 진행되고, 해당 교수가 쓰는 특정 기구와 특이 사항이 무엇인지, 해당 수술에서 특별히 신경써야 할 장비, 진료재료, 기구 관리는 무엇인지... 현장에서 보고 바로바로 알려주고 습득하는 데는 수술 진행에 맞추어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제한이 따른다.



수술실 내 로테이션도 병동 간호사가 타과 병동으로 로테이션 하는 것처럼, 간호 지식과 기술의 바탕은 같지만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관심과 노력을 요한다. '내가 이 과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못하는 건데.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똑같아 질텐데, 그 때 잘 하면 되지...'하며 여유를 가지기에는, 교육을 위한 인력이나 시간이 촉박하게 주어지는 편이라 마음이 급해진다. 스크럽, 순환 간호사로 2인이 일하는 게 기본이기에 한 사람의 지적 공백은 다른 사람이 그만큼 집중하고 신경쓰며 채워야한다. 한 명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 하면, 한 사람 몫의 인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신규 수술실 간호사면 신규라서 다 모르겠거니 생각하고 하나씩 확인해주지만, 어느 정도 아는 선생님이 '여기도 이렇게 하겠지.'하고 안 물어보고 저지르는 실수는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진료과의 예민함과 짜증을 받아가며 수술해야하는 경우에는, 일하면서 가르쳐줘야하는 사람이 상대를 밉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수술간호는 마취되어 의료진에게 몸을 모두 내맡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스크럽, 순환 간호사가 더블 카운트하며 반복 확인하는 일이 많은 것은, 그만큼 체내에 잘못된 삽입물이 적용되거나, 거즈와 기구 등의 잔류물이 남으면 환자의 예후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요 착하고 재미있는데 수술 공부를 영 안 해온다든지, 인계를 안 받아 온다든지, 꼼꼼히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곁의 사람을 소진시킨다. '저 사람 좋은데 왜 쟤랑 일하기 힘들어하지?'라는 반응은 같이 일 안 해본 사람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멸균 영역에 집중하여 수술을 하면서 두 사람 몫을 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금방 지친다.



새로운 환경, 간호사, 의사에 적응하고 익혀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본인의 고충이 어떤지 모르기에 강요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직장이기에, 자기 몫 1인분의 일은 할 수 있기를 기대받는다. 물론 재촉하지 않고 개별적인 속도와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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