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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간호사 임상, 취업은 쉬웠지만 남아있을 이유는 적다


간호학과 들어와서 다들 자격을 얻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면허 합격률과 취업률은 높다. 대부분의 경우 졸업 전에 있는 상반기, 하반기 채용을 통해 수도권과 지역 유수의 병원들이 채용을 마친다. 드물게 취업에 실패한 사람도 모교 대학교에서는 그들의 지도 교수님이 아는 간호계 인력을 통해 지역 병원, 요양 병원에 연줄을 이어 주곤 했었다. 그래서 늘 취업률이 대학 내에서 최상위를 찍는다. 아직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수많은 신규 간호사가 배출되는데 병원에 늘 자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서글프다. 수많은 간호사들이 근무 스트레스, 결혼, 임신과 출산 등으로 근무에 한계를 느끼며 끊임없이 퇴사하기 때문에 병원에는 항상 인력이 필요하고 매년 채용 공고를 올린다. 그래서 많은 대형병원이 웨이팅 순번제(적합한 인력을 미리 합격 시켜놓고, 몇 번째 혹은 몇 월쯤 입사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준다. 졸업 후 이 기간 동안 휴식하거나 요양 병원 등에서 몇 달간 짧게 돈 버는 신규 간호사선생님들이 많다.)를 시행하면서까지 인재를 미리 잡아두고 있으며, 외곽 지역의 요양병원, 요양원에는 늘 간호인력이 부족해서 신규 간호사라도 뽑아 차지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임상 현장에서 일한다고 표현한다. 간호사 면허증이 우대가 되는 어느 직종이든 관련된 임상 경력은 도움이 되기에, 2-3년 정도의 임상 경력을 쌓고자 하는 대학 동기들이 많았다. 4학년 졸업 전에 취업하는 게 간호대학의 일반적인 코스라 동기들과 함께 준비하고 나아가기에도 좋고, 제일 좋은 병원에 들어가기 가장 문이 넓은 시기다. 업계에 신규 간호사도 경력 간호사도 너무 흔한 상황이라, 일반 병동/특수파트 간호사가 더 좋은 근무 조건으로 스카웃 받아서 병원 이직하는 건 흔하지 않아 보인다. 보통은 다니던 병원보다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찾아서 본인이 경력직 채용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본다. 어차피 임상 경험에 대한 욕심도 있어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면, 근무 복지가 시스템적으로 좋은 대형병원을 선택하게 되기에 환자처럼 구직자 입장에서도 간호사의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3교대 자체의 신체 부담과 비정기적 근무 시간으로 인한 대인 관계 제한, 직장 내 수직적인 관계, 긴장되고 높은 업무 강도, 환자와 보호자 응대에 지쳐서 그만 둔 간호학과 동기들이 많다. 타지 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기숙사 지원이 끝나는 2년 즈음에 퇴사를 마음먹었다. 이제는 퇴사 후 시간이 제법 흘러 각자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같이 일하며 이직한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대학교 동기들 중에 보건교사, 지역 간호직 공무원, 건강보험공단, 의료기기 업체 등 임상 밖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제법 생겼다.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그만두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절실하고 간절하게 임상 탈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또 각자의 새자리에서 새로운 고충을 겪는다. 현장에서 의료지식이 있는 간호사가 자기 뿐인 경우, 인수 인계도 없는데 공직 내 부서 이동이 잦은 경우, 감염병 관리 업무에 끊임없이 차출되고 소진되는 경우... 동료 간호사가 대부분이던 임상과 달리 그곳에서 간호사는 자신 뿐인 경우도 많다. 업무와 직장 생활의 고충을 나눌 곳도 없고, 업무에 대한 책임과 논의는 온전한 자기 몫으로 돌아가는 일부 환경들. 



그때는 또 병원 생활의 장점들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병원 의료진 중 다수인 간호본부에 속해있는 소속감, 동료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며 느끼는 동질감과 특유의 고충에 대한 공감들, 부속처럼 돌아가지만 역설적으로 또 부속이기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책임감(나 없어도 병원이 잘 돌아간다는 느낌), 3교대 근무가 주는 낯선 시간의 적은 인파와 조용한 거리, 건강을 팔아 돈을 벌었던 1.5배 야간 수당들.


제 한 몸 부양해서 먹고 살기는 왜이리 아등바등해야 하는지. 노력해서 자격을 인정받고 자리를 얻어도, 사회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는 참 쉽지가 않다. 각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선택할 길이 그나마 넓다는 게, 간호학과가 주는 선물이었을까. 어쩌면 그래도 여전히 '간호'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우리 가능성을 옭아매는 족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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