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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주의 집중력도 학습된다

수술실 간호사의 환자 안전 사고 경험


오랜 지기인 친구를 통해 직장인으로서 성장한 모습을 본다. 불명확한 지시 사항으로 실수가 생겼는데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크게 곤란했었다고 한다. 신입에게 맡겨진 관리 감독인데 아무도 중요성을 설명하거나 지도해주지 않았고, 친구는 다른 사람이 재확인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구나 생각하고 한번에 일처리를 한 것이다. 뒤늦게 발견되어 혼이 나고 시말서를 썼다고. 친구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이제는 내가 잘못한 부분이 명확히 보이지만 조직적 한계도 느꼈다며. 어느 누가 인계를 받아 그 일을 하든 실수는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었을 거라고, 자기 감정도 인정하고 표현할 줄 안다.


친구는 실수를 맞이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기객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발생한 사고, 미흡하거나 불완전한 인수 인계의 오류, 불충분한 지도 감독 및 교육 여건 등 복합적인 요인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개인의 부주의나 지식과 기술 미숙으로 자기를 탓하며 자괴감을 가지기보다는, 이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인정하고 깨달으며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 지 방법을 찾는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은 다른 사람의 간접 경험과 조언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신의 내면이 그만큼 균형잡히고 단단해져야 가능하다. 내가 있는 위치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인정한다.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해결하는 능력을 키운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업무 환경이 된다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주며 함께 성장하고 더 큰 시야에서 업무를 알아간다.


힘들어하기만 했던 친구인데,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성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신기하다. 결국은 체험하며 극복하며 성장한다. 함께 서로의 상처와 배움을 공유하며 살아갈 친구가 있어서 기쁘고 반갑다.



신규 선생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 선생님이 맹해지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곧잘 하던 일도 갑자기 순서를 틀리거나 빼뜨리거나 하는 것이다. 일시정지된 그 사고가 밖으로도 보인다. 그러면 눈 마주치고 웃으면서 “오늘 힘들었구나?”하면 자기도 끄덕이며 웃는다.



수술실 간호사로 일하다보면 꼼꼼한 주의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 너무 많다. 장시간 한 자세로 서서 일하는 경우도 많고 무영등에 반사되는 수술 필드나 복강경 화면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해서 눈도 아파 체력적으로도 지치지만, 무엇보다 계속 집중해서 일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친다. 기대되는 수술 지원을 하기 위해서 정해진 일들이 있어 학습하고 숙지하는 것은 기본인데, 거기에 환자와 상황,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변수까지 합쳐진다. 놓쳐버린 하나의 실수가 낙상이나 검체 및 계수 오류로 이어지는 환자안전사고가 되기 십상이다.


일을 하는 것과 그 상대가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실수와 사고를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지 싶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환자가 수술실 전처치실, 그리고 수술방에서 환자확인, 수술명과 수술 부위와 방법을 확인하는 재확인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환자 라벨이 잘못 붙여지든, 환자가 수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못 받았든지(특히 전이로 인해 더 절제할 가능성, 개복 가능성, 타과 협진 등), 아예 수술 부위 좌우가 바뀌든지 말이다.


수술 중에도 실수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수술 과정에 사용하는 비흡수성 수술 재료가 체내에 잔류한다든지, 거즈나 니들과 같은 계수 관리 물품의 카운트가 맞지 않는다든지, 갑자기 혈관이나 근처 장기가 찢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어 예상 외의 수술 과정으로 확장된다든지, 장시간 작동하며 과열된 라이트 케이블이나 CO2 라인 때문에 화상을 입는다든지. 집도의,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들, 수술실 소독간호사, 순회간호사가 다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재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 거치는 것도 이런 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소통하며 협조하지 않으면 어디서든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술 전후, 마취과 의사가 마취시키고 깨우는 과정에서 낙상과 피부 상태 간호도 중요하다. 침대에서 미끄러져서, 수술을 위해 자세 잡다가 다리가 떨어져서, 전기 소작기의 전류를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보비 플레이트가 제대로 부착되지 않아서. 사고의 이유는 각양 각색이지만, 언제든지 그러한 위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규 선생님을 가르칠 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말이 많아지는 편이다. 일전에 이런 안전 사고가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며, 경각심과 예방법에 대한 정보를 함께 공유한다. 실수와 사고의 위험성은 항상 주변에 있기에, 의심가는 부분은 재확인하고 정확히 수행하는 습관이 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신규 선생님께 희망을 준답시고, “일하다보면 집중력도 체력처럼 연습하면 늘게 되서 점차 나아질거야.”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은 수술 프로시져를 학습하고 따라가기에도 집중력이 벅찬 시기이기에, 상황을 폭넓게 보며 안전 사고까지 예방하기에는 힘이 많이 드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러했고 나 이전에 수많은 수술실 선생님들이 그러했듯이, 수술 과정을 따라가며 필드를 보는 눈을 키워가다보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이제 그 이상의 수술실 환경과 사람이 보인다. 지금처럼 관심과 성실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보면, 깨닫지도 못하게 자연스럽게 그런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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