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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씨 Jun 07. 2022

요가 5개월 차에 얻은 것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은 스물아홉이었다. 성가신 만성두통은 기본이요, 난생 처음 반깁스를 하고 목발에 몸을 기댄 채 여름을 보냈다. 깁스를 풀고, 가을이 지나고, 이대로 더 다치거나 아픈 곳 없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십사 하늘에게 빌었건만 한 해 끝자락에 몸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조직검사 결과, 다행히도 암은 아니었지만 제거 수술을 해야 했다. 12월 23일, 이십대를 9일 남짓 남겨두고 있던 날. 수술대 위에 누워 종양 찾아 몸을 쑤셔대는 바늘을 맨 정신으로 견디며 생각했다. 새해에는 꼭 건강하자. 1년 내내 운동하겠다고 말만 한 거 지겹지도 않니. 안 되는 이유가 떠오른다면 그건 핑계일 거야. 그냥 뭐라도 제발 좀 시작을 하자.


그렇게 뭐라도 시작한 게 요가다. 많고 많은 운동 중 하필 요가인 이유, 별 거 없다. 그저 집에서 고작 432m 떨어진 곳에 요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라고 거창하게 시작하면 제 풀에 꺾일 게 뻔했으므로 진입장벽을 낮췄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을 것, 가격이 너무 부담되지 않을 것. 운이 좋게도 두 요건에 딱 부합하는 요가원이 있었고 1일 체험권 쓰러 갔다가 그 날 바로 3개월 정기권을 끊었다. 3개월 동안 스스로를 지켜보니 일주일에 세 번씩 요가 하는 삶을 생각보다 잘 해냈다. 이정도면 내 의지력을 믿어 봐도 되지 않을까. 한 번 해냈으니 두 번 더 해내보자는 마음으로 6개월을 연장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연장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요가 이야기를 하면 ‘그게 운동이 되느냐’는 반문이 곧잘 돌아온다. 많은 동작들이 겉보기에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그런 듯하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다들 한 번 시켜보고 싶다. 요가 하는 동안 온 몸의 근육이 얼마나 바들바들 떨리는지, 바들바들 떨면서 그 시간을 참아내는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겪어봐야 알 텐데. 요가원 전신 거울 앞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사진 찍은 사람들이 신기하다. 수련 전에 부지런히 사진 찍는 성실함을 갖췄거나 타고나길 아름다운 사람들일 테다. 안타깝게도 나의 요가는 우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원래 질문으로 돌아오자. 요가가 운동이 되느냐? 엄청 된다.


요가 수련 50분 중 대부분은 견디는 시간이다. 평소에 잘 쓰지 않거나 잘못 쓰고 있는 근육들을 수축하고 이완시키며 불편하고 아픈 감각을 느낀다. 오늘은 허벅지 뒤가 많이 당기네, 복부가 미친 듯이 떨리네, 어제보다 더 깊게 내려가네, 그렇지만 아직도 머리는 안 닿네. 몸에 오는 자극과 고통을 명확하게 직시한다. 같은 동작이어도 내 컨디션에 따라 날마다 느낌이 다르다. 자극이 익숙해지면 더 깊은 자극이 느껴지도록 몸을 움직인다. 어깨가 으쓱 올라가지는 않았는지 허리가 너무 꺾이지는 않았는지 구석구석 살핀다. 살면서 내 몸에 이렇게까지 집중한 적이 있던가. 모든 생각과 감각이 오롯이 나를 향한다. 맨 마지막 동작 사바 아사나(송장자세)로 휴식을 취할 때면 평온함과 개운함이 몸에 깃든다.


변태 같은 고백이지만 나는  고통을 좋아한다. 요가 수련    여기저기에서 근육통이 느껴지면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만 같다. 고통을 참아낸 인내의 시간은 어떤 형성물로, 다름 아닌 근육으로 남았다. 때마침 더워진 날씨에 반팔을 입었더니 팔에 알통이 보이는  아닌가! 언젠가 요가 선생님이 ‘요가 근육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헬스처럼 눈에 띄는 근육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수련하면 분명 속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을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팔에 힘을 주면 이두근이 만져지고 배에 힘을 주면 복사근이 만져졌다. 요가가 지방을 깎아내는 운동은 아닌지라 근육들은 여전히  속에 파묻혀 있지만 분명 존재했다. 단단한 요가 근육이  안에 생겨나고 있었다.


속이 단단해지는 느낌은 단지 몸에 그치지 않았다. 몸에 생긴 근육 마냥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다. 요즘 말로 리추얼이라고 한다던가. 무언가 규칙적인 자기만의 의식(ritual)을 만드는 일이 유행이다. 미라클 모닝, 책 읽기, 운동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리추얼의 정의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이라면, 나의 리추얼은  요가다. 퇴근 길 지하철 인파에 지쳐 기력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꾸역꾸역 요가원으로 향한다. 수련하고 집에 오는 길의 후련함을 알기 때문이다. 요가 하는 5개월 동안 얻은 건, 몸의 근육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꾸준히 운동하는 나, 핑계대지 않는 나, 꾀부리지 않는 나, 중심을 잡는 나를 믿을 수 있게 됐다. 새해에는 꼭 건강하자고 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회사-요가-집으로 나란해진 일상이 마음에 든다.


어느 퇴근길이었다. 오랜만에 시작한 연애가 전화 한 통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공덕역에서 효창공원역을 지나 용산역까지, 지하철 두어 정거장 거리를 걸으며 쪽팔린 줄도 모른 채 엉엉 울었다. 지하철에서 눈물이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만, 집에 도착하니 다시금 고장 난 수도꼭지 마냥 줄줄 흘렀다. 엄마가 내게 물었다.


“오늘 요가 갈 거야? 그냥 쉬지?”

“아냐, 갈래. 안가면 그게 더 짜증날 거 같아. 끝난 관계가 내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거 싫어.”


저녁밥을 제쳐두고 곧장 요가원으로 갔다. 퉁퉁 부은 눈으로 갔던 이 날의 프로그램은 하필 제일 힘든 코어 수련이었다. 마시는 숨에 후회와 자책이 몸 한가득 채워졌다가, 내쉬는 숨에 그대로 빠져나갔다. 다시 마시는 숨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찼다가 내쉬는 숨에 흘러나갔다. 몸에 드나드는 숨결과,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바라봤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얼굴에 송글송글 맺혔다. 내 얼굴이 붉어진 게 수련이 힘들어서인지 울음을 참아서인지 사람들이 알 게 뭐람. 속 시끄러운 50분 수련 끝에 언제나처럼 평온함과 개운함이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모든 게 괜찮았다. 마지막 사바 아사나를 하며 다짐했다. 슬퍼서 울더라도 내가 가꾸어온 내 일상을 잘 지켜내자고. 외부 환경이 나를 흔들더라도 동요되지 않을, 단단한 나의 요가 근육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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