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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ONA VITA Mar 02. 2022

헤매기 5. 요가, 충실하지만 절실하지 않게.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으면

  요가원을 다닌 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 네 달 째 마리치아사나 D, 한 동작에서 진도를 못 나갔다. 세상에, 내가 요가에 재능이 없다니! 문화센터에서는 늘 우수학생이었는데! 요가 유튜브를 보고도 잘만 따라 했는데! 셀프로 판단한 요가 영재의 실체는 근력도 없고, 유연성도 보통이고, 어깨도 뭉쳐있는 5년 차 초보자였다. 


  요가를 좋아했다. 퇴사 후 유일한 계획으로 요가 지도자 과정뿐이었을 정도였다. 웬걸, 요가원을 본격적으로 다니니 기분이 별로였다. 못하고, 재미없었다. 너무 열정적이었던 게 문제였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과했다.  '내가 이 동작을 가르친다면?' 모든 수업에서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어떻게든 뽕을 뽑겠다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기쁨은 없었다. 끝나면 오직 이번 수련도 잘 버텼다 하는 마음뿐.


  요가는 문화센터에서 처음 접했다. 3달에 9만 원이었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녔다. 요가를 가는 날이면 출근할 때부터 사바사나의 순간만을 기다렸다.(송장 자세라고도 한다. 요가의 마무리 자세로 온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다.) 뼛속 깊이 새겨진 모범생 DNA는 어디 가지 않아서 이글대는 눈빛으로 수업을 들었지만 그래도 큰 욕심은 없었다. 그러나 회사를 안 다니는 지금 요가는 나의 유일한 정기적 일정이다. 요가원은 문화센터보다 훨씬 비싸다. 반드시 뭔가를 이뤄내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어깨를 내리라고 매번 말씀하셨다. 도대체 어깨 긴장은 어떻게 푸는 거람. 욕심만큼 어깨는 딱딱해졌고 그럼 또 동작이 잘 안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한 달을 다니니 지도자 과정을 향한 마음은 사그라들고 왕복 3시간 거리는 귀찮아졌다. 늑장 부리다가 겨우겨우 늦게 수련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매트를 깔자마자 곧장 바로 수리야나마스카를 시작하고, 서둘러 동작들을 쌓아나갔다. 그러자 같은 동작인데도 1월보다 수련이 20분 정도 시간이 빨라졌다. 하나하나 정확하게 하려는 부담이 없어져서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머릿속에 딴생각들은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드디어 개운했다. 내가 알던 기쁨. 못하고, 재미있다. 절실함이 사라지자 가려져있던 기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 3년간 다닌 협동조합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6개월을 일하고 또 그만뒀다. 협동조합을 다닐 때는 부지런히 칼퇴를 했다. 이룬 게 없다고 느꼈지만, 꽤 행복했다. 어떻게든 8시간 동안 몰입했다. 열심히 하려고 간 스타트업에서는 자발적으로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잘하고 싶었다. 해내고 싶었다. 피곤하니 업무 효율은 떨어지고 그러니 능력은 더 떨어지고. 일이 싫어졌다. 즐기지 못하는 그 마음을 다시 탓했다. 돌이켜보니 싫어진 게 아니었다. 절실함이 좋아함을 압도한 것이었다. 


나는 좀… 똑똑한 편이다. 무슨 일이든 대충 원리가 보인다. 그래서 빨리 배운다. 문제는 단점도 잘 본다. 그래서 무조건 달려들지를 못한다. 어떤 고통과 고생을 얻을지 빤히 보인다. 포기한 꿈들도 그런 식이었다. 기자는 정의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해, PD는 밤을 너무 많이 새. 프로그래밍을 하기에는 끈기도 디테일도 없어. 흔히 말하는 ‘각’을 너무 잘 본다. 그중에 제일은 탈출각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끝까지 해본 것이 별로 없는 이유이다. 탈출각을 세운 길에도 앞장서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초심자인 나와 비교했다. 시작할 땐 소질 있다고 칭찬받으며 즐겁게 시작했다가, 중급자가 되기도 전에 도망가는 것이다.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절실함만 있었다.


이제는 뭐든 힘을 빼고, 조금은 멍청해지자. 대신 충실하지만 절실하지는 않게.

그래야 잘하는 초보를 넘어 다음 단계로, 기꺼이 못하는 중급생으로 갈 수 있다. 그래도 매주 내 어깨의 긴장은 조금씩 풀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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