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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아직도 헤매는 것 같다면

  너에게는 마음껏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 아직 그 날개를 펼치지 않은 것 뿐이야! 지금까지 너는 울타리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제는 새로운 세상으로 더 높게 날아오르는 거야.


 우리는 살면서 잠시 숨이 멎을 때가 있다. 좌절하는 순간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을 때, 끔찍한 사고를 맞은 순간에도 경험한다. 아니면 첫눈에 사랑에 빠진 순간이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기쁜 순간에도 숨이 멎을 때가 있다. 그렇게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다음에는 숨 쉬는 기쁨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쩌면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아니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일 것이다. 숨 쉬는 기쁨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며 내가 놓치고 살았던 소중하고 숭고한 그 무엇의 깨달음이다.


 취업 한파가 몰아치던 시기였다. 아버지 사업이 무너진 뒤, 홀로서기를 해야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도서관에 앉아 취업 공부만 붙잡는 거였다.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책 속에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었고 빽빽한 문장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주머니 속에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동전 두 개가 주머니에서 찰랑거렸다. 동전 두 개로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떠올렸지만 자동 커피 판매기에 커피 한 잔이 고작이었다. 자판기에 동전 두 개를 넣었다. 커피 한 잔이 내려왔다.


 '이 커피 한 잔에 내 영혼이 깨어났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문득 집을 나설 때 들었던 엄마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들, 네 어깨에 많은 짐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엄마가 아들에게 해준 최고의 격려였다. 

 

 도서관 열린 창으로 바람과 함께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지만, 사람들의 비명에 진짜 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새를 피했다. 어떤 사람은 새를 향해 고함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을 들어 새를 향해 던지기도 했다. 낯선 세상에 들어온 새는 갑작스러운 인간의 저항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허공에 날갯짓만 할 뿐이었다. 누군가 큰 막대기를 들고 새에게 다가갔다.


 "훠이 훠이!"


 결국 새는 벽에 부딪혔다. 정신을 잃은 새는 책상 위에 떨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날아오르지 못했다. 새는 날아오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새가 다시 날 수 있을까?'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새에게 다가가지 않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하나만 열려 있던 창문을 하나씩 더 열기 시작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람도 일어서서 창문을 열었다. 잠시 뒤, 바깥 바람이 들어왔다. 창문 밖에 거인이 큰 입김을 불어주는 것 같았다. 가벼운 물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다.

 새는 바람의 기운을 느꼈을까? 날지 못했던 새는 다시 날개를 펼쳤다. 마치 바람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 같았다. 바람은 새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었다. 생기를 찾는 새는 진짜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날아갔다. 자신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고, 어디에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창문을 넘어간 새는 태어나 처음으로 날갯짓하는 것처럼 날아올랐다.


 그 순간 나의 숨통도 트였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허우적거렸던 나에게,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나에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마음을 무겁게 했던 우울한 생각들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나는 도서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새가 날아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손끝으로 바람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은 머물지 않고 지나갔다. 바람은 계속 나를 움직이게 했다.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졌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을 거야, 아직 날개를 펼치지 않은 것뿐이야.'

 

 다시 숨 쉬는 기쁨을 느낀 다음 날이었다. 나는 진짜 하늘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더 이상 갑갑한 도서관에 앉자 공부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다. 무엇이라도 붙잡으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습관처럼 방문하던 취업게시판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게시판에는 회사 규모에 따라 구인정보 문서의 크기가 달랐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중소 회사의 구인정보 문서들이 눈에 들어 왔다. 그 곳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전공자도 아니었고, 자격증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허공에 날개짓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올 것 같았다. 

 

 절실한 바램은 기회로 이어졌다. 언제 면접을 볼 수 있냐는 말에 내일이라도 찾아가겠다고 나는 말했다. 다음 날 면접이 끝나고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시 숨쉴 수 있는 기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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