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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누가 나를 두렵게 만드는가

 며칠 뒤, 온종일 현장에서 뛰어다닌 탓에 온몸에 땀이 흠뻑 젖었다. 숙소로 돌아와 옷을 벗고 씻으려고 할 때였다. 소장은 현장 사무실에 있는 설계도면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창문 밖은 이미 암흑이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어두운 곳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산속을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니.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장 소장은 떨고 있는 내 손에 손전등을 쥐여 주고는 숙소 문을 닫았다.


 손전등을 켜고 어두운 산길을 내려갔다. 산속의 밤은 마치 블랙홀 같았다. 모든 불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어둠에서 손전등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디를 비춰도 훤히 들여다보였고 손전등을 달을 향해 비추자 달 표면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달 옆에 자고 있던 별들도 하나씩 깨웠다. 시간이 지나자 깜깜했던 산속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손전등을 꺼도 가까운 나무들이 보여서 눈의 적응력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새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멀리 컨테이너 사무실이 보였다. 막상 목적지가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다. 등 뒤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쫓아 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더 구체적인 허상들이 떠올랐다. 심장이 급하게 뛰고 발걸음도 빨라졌다. 내 손에 손전등이 길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음에도 내 마음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은 산길이 아닌 하늘과 땅을 번갈아 가며 미친 듯이 움직였다. 

 

 나는 산길을 벗어나 풀숲으로 뛰고 있었다. 그곳은 건물 기초공사를 위해 ‘접근금지’ 팻말과 함께 여기저기 땅을 파놓은 곳이었다. 위험은 등 뒤가 아닌 발아래였다. 나무판자를 밟은 소리와 함께 나는 맨홀로 떨어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떨어져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행히 깊은 맨홀은 아니었다. 중간 깊이에 고정된 나무 각목들이 있어서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손전등은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불빛은 살아있었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 나무 위에 간신히 걸터앉았다. 잠시 뒤에 나무와 부딪친 허벅지와 팔에 통증이 느껴졌다. 욱신거리고 쓰라린 통증 뒤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전등이 비춘 불빛을 보면서 나는 고통을 참았다.


 머리를 들자, 달빛이 보였다. 달과 수많은 별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조금만 침착하게 걸어갔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뒤에 무언가 쫓아온다는 허상을 만든 것은 내 무의식 속의 두려움이었다. 순간 맨홀에 빠진 내 모습이 슬펐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동안 현장에서 거친 사람들 틈 속에서 ‘초짜’, ‘몽키’, ‘똥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꿋꿋이 버텼던 마음이 터져버렸다. 혼자만 있는 맨홀에서 그동안의 설움이 쏟아졌다. 울고 나니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누군가가 나를 꺼내 주기 전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땅속을 홀로 비추고 있는 손전등을 쳐다보았다. '내가 만약 바닥에 떨어졌다면' 이란 상상이 들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도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손전등 불빛을 보았다. 불빛 아래에 무언가 꿈틀거렸다. 순간 뱀이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작은 벌레들이 지나가는 그림자였다. 잠시 뒤에는 날벌레가 모여들었다. 손전등이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 벌레들의 공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불빛과 벌레들 덕분에 잠시나마 고통과 무서움을 잊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맨홀 밖에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 소장과 토목 반장 목소리였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두 개의 손전등이 내 얼굴을 비추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토목반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드디어 몽키를 찾았네!"


  어둠 속에서 나를 두렵게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거나 두려운 순간이 왔을 때, 더 이상 쓸데없는 허상을 만들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오히려 내 자신에게 집중하며 오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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