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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두유 노우 몽키

 누구에게나 처음의 시간이 있다. 마음이 힘들 때 그 시간을 떠올려 보자. 지금도 ‘몽키’를 떠올리면 언제나 환하게 웃는 원숭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소리를 내면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현장에 내려가기 전에 나는 머리와 허리에 보호장비를 착용했다. 군화와 비슷한 작업 신발을 신고 발목에 각반까지 착용하자 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긴장은 되었지만, 현장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현장에 가까이 가자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땅이 질퍽거려서 신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현장 소장이 밟고 간 자리를 따라 한 걸음씩 내디뎠다. 땅만 쳐다보고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쳤다.


 "멈춰!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바로 눈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에게 소리친 사람은 토목 반장이었다. 그의 손에는 나무꼬챙이가 있었고 눈을 크게 뜨고 뱀 뒤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뱀은 머리를 더 높이 쳐들었다. 그는 순식간에 나무꼬챙이로 뱀 머리를 땅에 눌렀다. 뱀의 꼬리가 나무꼬챙이를 친친 감았다. 그는 힘을 풀지 않고 뱀이 숨이 막혀 죽을 때까지 목을 졸랐다. 뱀 꼬리에 힘이 풀리자, 뱀 머리를 집어 들고 숲속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초짜가 왔구먼, 땅에 돈 떨어졌어. 앞을 보고 걸어야지. 현장에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는 수가 있어."


 생명을 살려준 그의 사투리가 듣기 좋았지만 ‘초짜’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다시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너무 긴장해서일까? 신발은 바닥에 그대로 둔 채, 양말 신은 발만 쏙 빠져나왔다. 오른발이 진흙에 들어가자 왼발도 차례로 들어갔다. 땅에 온통 접착제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진흙이 잔뜩 묻은 발을 다시 신발에 우겨 넣었다. 차갑고 미끈거렸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신발 끈을 조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완벽한 초짜였다.

현장 소장이 토목소장에 공사 진행 상황을 물어보는 동안, 나는 주변 현장을 둘러보았다. 포크레인, 굴착기, 덤프트럭 등 중장비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는 산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매캐한 경유 냄새에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역동적인 현장의 움직임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날 저녁, 나를 환영하는 회식 자리가 있었다. 건설 현장 옆에 있는 한밭 집이었다. 그곳 주인은 뒷마당에서 키우는 닭을 잡았다. 고향집에서는 전화만 하면 치킨이 배달되어서 왔는데 이곳은 닭 잡은 모습부터 요리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현장 소장은 닭 다리를 하나 뜯어 나에게 주었다. 자연에서 키운 닭이라 조금 질기긴 했지만 뜯는 맛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 소장은 차례로 나를 소개했다. 토목 반장, 기계 반장, 전기반장과 차례로 인사했다.


 술이 들어가면서 목소리도 커졌다. 생소한 사투리에 듣기 어려운 말도 있었지만, 억양과 표정들이 재미있었다. 낯선 곳에 가면 모든 사람이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기계 반장은 내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오전에 현장에서 기계반장에 혼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이, 거기 옆에 있는 ‘몽키’ 좀 가져다 줘”

 그가 '몽키'를 가져 달라고 했는데, '몽키'가 공구 이름인지 몰랐다. 

 ‘동물원도 아니고 원숭이를 왜 찾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본 다음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현장에서는 '없다'라고 하면 어떻게 해! 몽키 비슷한 거라도 찾아와야지.''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고 원숭이 비슷한 동물도 찾을 수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없는데요..."라고 똑같이 말하자.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계 반장은 술에 취한 채 또다시 내게 물었다.

 "너 몽키가 뭔지는 알고 있는 거야"

 "저기... 원숭이 아닌가요?"

 반장들이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웃는 이유도 모른 채 나도 따라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기계 반장은 한참을 웃은 뒤에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한 기사. 자네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대학 정도 나왔으면 흔한 공구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앞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된다.”

 “김 반장, 그만해. 여기 앉아 있는 사람중에 초짜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 모두 처음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잖아.”

 

 현장 소장이 초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몽키는 내 인생에 절대 잊을 수 없는 공구로 각인되었다. 몽키의 정확한 명칭은 멍키스패너다. 기계에 붙은 볼트나 너트를 조이거나 풀 때 사용한다. 그날 이후로 이름대신 몽키라고 불렸다. 현장에 내려갈 때면 항상 몽키를 몸에 달고 다니면서 볼트를 조이거나 풀었다. 


 마음이 지칠때, 볼트를 조이면 마음을 다잡은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꼬여 있거나 초조할 때 볼트를 풀면 마음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내려놓은 생활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현장에 적응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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