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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때로는 돌아서 가는 것도 괜찮아

 현장 소장과 읍내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길 가운데 마대(자루)가 버려져 있었다. 내리막길이고 커브 길이어서 그냥 밟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때 현장 소장은 멈추라고 말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마대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버려진 마대가 아니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이었다. 엎드려 있는 몸을 흔들자 나는 깜짝 놀랐다. 산골 마을에 우리가 사는 집 주인 할아버지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현장 소장이 내게 멈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밟고 지나갔을 것이다.


 할아버지 몸이 뜨거웠다. 뜨거운 햇빛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열사병으로 쓰러진 것 같았다. 현장 소장은 응급 처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그늘로 옮기고 의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할아버지 윗옷을 하나씩 벗겨내고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신 다음 할아버지 이마에 올려주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체온을 최대한 낮추려고 했다. 나도 겉옷을 벗어 아래위로 흔들면서 부채질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뒤에 눈을 떴고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와 현장소장은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그리고, 차를 돌려 다시 마을로 향했다.


 나는 차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할아버지 흰머리를 엉클어지게 했지만, 의식을 돌아오게 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해서야 할아버지는 정신을 차렸다.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혼자 걸어가려 했지만 아직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부축해서 집 앞까지 함께 걸었다. 현장 소장은 차에서 담배를 태우며 나를 기다렸다. 집 앞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불렀다. 집 안에서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왔고, 할아버지 모습을 보자,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이렇게 더운 날에 밭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집에 들어와서 음료수를 마시라고 했지만, 사양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걸어가면서 나는 이전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차를 운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순간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차에 타면서 현장소장에 물었다.


"어떻게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어요?"

"네가 운전에 신경 쓰듯이 나도 옆에 앉아서 항상 위험에 대해서 생각하지. 예전에 모텔에서 자다가 불이 난 적이 있는데 가까스로 빠져나왔지. 그 이후로 항상 건물에 들어가면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 조금이라도 위험한 생각이 들면 멈추거나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하는 습관말이야.”

"위험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는 거예요?"

"야간에 자동차 불빛을 보면 눈부심이 심해서 마주 오는 차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운전하는 것이 편리하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도 얼마나 편한지 몰라. 지나가는 사람이며 풍경들을 마음껏 볼 수 있잖아. 그리고, 다녀간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멋진 풍경 사진 찍는 게 내 취미중에 하나지."


 그는 가방 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자신이 다녀간 곳을 노란색 형광펜으로 칠해 놓았다. 도로들이 온통 노란색이었다. 서해안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녀 본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경상도를 벗어났다. 현장 소장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이 다녀간 길을 쳐다보며 뿌듯해했다.


 “위험만 생각한다면 어디에도 가지 못할 거야. 하지만, 위험이 항상 함께 있다는 생각하고 사전에 위험의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세상을 좀 더 평온하고 낙관적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거야.”


 행복한 인생길은 돌아서 가는 것 


 그는 나에게 운전을 하면서 위험을 대비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장거리 운전을 많이 했던 나에게 유용하게 쓰였고 실제 사고에서 나를 구하기도 했다. 


 첫 번째는 고속도로에서 차간 거리를 넉넉히 두고 짐을 많이 싣고 가는 트럭 뒤에는 붙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앞서가던 이삿짐 트럭에서 소파가 떨어져서 옆 차선으로 핸들을 돌렸지만, 다행히 옆 차선에 차가 오지 않아서 무사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는 늦은 저녁 고속도로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길이나 골목길에서는 더욱 천천히 운전해야 한다.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뒤집어진 차를 발견하고 심장이 멈출 뻔한 적이 있었다. 학교 길이나 골목길에서는 언제 아이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서 운전을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어떤 차를 타더라도 안전벨트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안전벨트는 아무리 차가 허공에서 롤러코스터처럼 회전해도 나의 몸을 그대로 잡아주었다. 

위험은 늘 사소한 것에서 감지되곤 한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면 간과하지 말고 멈추어야 한다. 운전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특히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후진이나 역주행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순간 분명 마음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감지되지만 대부분 무시하고 때문에 사고로 이어진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떨까? 

제대로 된 길을 갔더라면 오히려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길을 잘못 들어섰기 때문에 위험을 피해간 거라고, 그래서 잠시 돌아가는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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