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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어느 쪽으로 가고 싶니

  내 안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내 영혼이 기쁘게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장에 온 지 1년이 지나 토목과 기계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현장 소장에게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다. 그 날따라 현장에서 공사감독관과 말다툼을 했고 사무실에서는 새로 온 현장 소장에게 꾸중을 들었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생각과 아무런 인정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고향 집이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어떠한 전화도 받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잠적을 한 것이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지만, 현장으로 가지 않았다. 계속 집에 있는 것도 답답해서 학교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1년 전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공부는 잘돼?"

 "아니, 잘 안돼. 계속 시험은 보는데 떨어지니깐 위축되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지고 말이야. 내 옆에 앉아 있는 친구는 공무원 시험 공부만 벌써 5년째 하고 있어. 나는 딱 올해까지만 도전해보고 안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해. 너는 어때. 그곳 현장 일은 할 만해?"

 "직장생활 1년이 고비라고 하던데 지금 내가 그런가 봐. 그냥 모든 게 힘들어."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나는 너처럼 어떤 일이라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후회하곤 해. 지금 난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일을 하면서 찾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일 그때, 내 능력이 미치지 않는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바라보거나 어느 회사가 좋은지 저울질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다 선택한 시골 폐수처리장이지만 나는 산골 마을 생활과 잊을 수 없는 인생 경험을 했다. 만약 아무런 일을 시작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친구 모습을 보면서 1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앉아서 공부하던 자리가 보였다. 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을 때 정신이 번뜩 들었던 순간이 생각났다. 지금 나는 어디쯤 날고 있는 것일까? 잠시 쉬어 가기 위해 물가에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때 마침 현장소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번 주까지 휴가 처리했으니깐 다음 주에 현장 복귀하도록!"

 다음 날 나는 현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아들을 위해 아침밥을 준비하는 엄마 모습이 보였다. 아들이 소식 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도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자고 있을 때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스스로 나를 회복하도록 지켜봐 주셨다. 집을 떠나면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괜찮아, 아들"

 괜찮다는 엄마 말에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눈물 젖은 김밥을 먹으며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 가까이에 왔을 때 나만의 비밀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얼마 전에 완성된 댐이었다.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댐 호수가 나왔다.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잔잔히 흘렀고, 반대편에 넓은 풀밭과 울창한 숲들이 보였다. 햇빛이 쏟아지는 강물 수면 위로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갔다. 마치 내가 ‘월든’ 호숫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내 영혼의 날개가 너무 무거워진 것일까? 수면 위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는 날씨가 나쁘다거나 주변에 먹이가 적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욕심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날아오를 때처럼 마음을 가볍게 한다면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사람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면 위에 오리가 수면 위에 떠있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물 위에 아주 쉽게 떠다니는 오리는 물밑에서 양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헤엄을 친다고 했다. 내 모습도 그랬다. 겉으로는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내면에선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삶을 붙잡고 있었다. 아직은 허우적대며 간신히 떠 있는 수준이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물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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