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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우주에서 누군가 나를 본다면

  비록 내 삶이 우주 공간 속에 한 점, 흐르는 시간 속에 찰나의 순간임에도 ‘살아 있음’으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이다. 


 현장에는 모든 공사가 끝나고 시운전이 시작되었다. 실제 폐수처리장을 가동하기 전에 여러 가지 설비를 시험 운전하는 과정이다. 미생물을 이용한 폐수처리공법이어서 많은 양의 미생물이 필요했다. 다른 폐수처리 현장에서 미생물을 옮겨와서 키우는 작업인데, 전문적인 용어로 'Seeding'(씨딩, 씨앗 뿌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먼저 미생물을 옮길 차량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정화조(분뇨) 차량을 이용했다.


 정화조 차는 빛바랜 초록색 탱크와 파란색 호스가 감겨 있는 차량이었다. 냄새가 많이 날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큰 트럭을 처음 타본 나는 신기했고, 똥을 싣고 다니는 차여서 행운이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로 위의 차들은 함께 가기 싫어서 추월하기 바빴다. 혹여 냄새가 차 안으로 들어올까 봐 창문을 꼭 닫은 채로 앞서갔다. 우리는 어디에 가던 불청객이었다. 밥 먹으러 식당에 갈 때도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가야만 했다. 혹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안심하고 주차해 놓으면, 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으로 코를 잡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움츠러들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남을 의식하지 않은 유일한 시간은 현미경 속 미생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미생물이 분해하고 있는 폐수 한 방울을 떠서 현미경 위에 올려놓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수많은 미생물들은 군집을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거인이 되어 하늘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릴 때 책에서 읽었던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떠올렸다. 


 신화가 시작되는 혼돈의 세상에서 나타났던 ‘왕뱀’의 모습, 머리가 여러 개인 ‘히드라’의 모습, 외눈박이 괴물인 ‘키클로푸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미생물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가진 미생물이었다.


 그 날개는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 손재주가 비상한 다이달로스는 반인반우의 모습을 한 미노타우로스를 가둬 두기 위해 미로를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미노스 왕의 뜻을 거역한 죄로 아들 이카로스와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히게 되고, 다이달로스는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미로를 빠져나왔다. 날아오르기 전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하늘을 나는 마법에 도취한 이카로스는 당부의 말을 잊어버리고 점점 높이 올라가다 밀랍이 녹아내려 바다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이카로스의 날개가 녹아 내리지 않고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빛과 에너지를 조절했다. 현미경 속에 그들의 발견은 폐수 분해가 정점을 지나 깨끗한 물을 볼 수 있는 신호였다. 온갖 괴물들과 싸워서 이긴 승리의 순간이었으며, 고난의 시간을 이겨낸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작은 미(微)생물이 아닌 아름다운 미(美)생물이었다.


 이카로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담대하게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운명에 쫄지 않고 이카로스처럼 태양 가까이 날 수 있었을까? 높이 날거나 낮게 날면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까 봐, 한 번의 실패로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안전하게 날아갔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 내가 폐수 분해를 위해 최적의 미생물을 찾아낸 것처럼, 인류가 꾸준히 우주 탐사를 위해 우주선을 지구 밖으로 보낸 것처럼, 나 또한 태양 가까이 날면서 나에게 맞는 날개와 항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인류는 태양 가까이 날면서 끊임없이 실패를 경험했기에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것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 ‘코스모스’, 칼 세이건, 사이언스 북스 –


 문득 '먼 우주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처럼 미생물의 삶과 죽음을 보고 있듯이. 어쩌면 우주에서 누군가 나의 모습을 본다면 나는 작은 미(微)생물의 모습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미(美)생물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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