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빛 Oct 22. 2021

히어로가 여기 있었네

 내 가슴 속에 히어로를 깨울 때마다 신들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인연과 행운을 가져다 줄지 모른다. 비록 아무런 안전이 보장되지 않지만 히어로의 삶은 자신만의 희열을 따르고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정화조 차를 타고 먼 곳으로 출장을 다녀올 때였다. 오전에 정화조 차에 똥을  싣고 동료와 함께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을 넘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나는 늦더라도 도착해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동료는 휴게소에서 먹고 가자고 했다. 저녁 시간이어서 휴게소에는 많은 차들이 들어와 있었다.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 주차장에 한 자리가 보여서 그곳에 간신히 주차를 했다. 차 문을 열려고 할 때, 등산복을 입는 50대 중년의 아저씨가 걸어왔다.


 “여기 바닥에 ‘버스’라고 쓰여 있잖아. 밥맛 떨어지게 하필이면 우리 버스 옆에다 주차하는 거야.”

 “여기가 아저씨 집 주차장이에요, 우리도 밥 먹으러 여기 왔어요!”

 화가 난 동료를 붙잡고 나는 휴게소 식당으로 향했다.

 “참으세요, 그러게 제가 도착해서 밥 먹자고 했잖아요.”

 “이건 너무 하잖아요!”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계속 뒤로 보려 하자 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식당으로 걸어 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빈자리에 마주 앉았다. 따뜻한 우동 국물이 몸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그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전 일이 신경이 쓰여서인지 우동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주변은 온통 깜깜했다. 산길로 이어진 고속도로에는 가로등 불빛만 외롭게 서 있었고 겨울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차는 바람에 부딪칠 때마다 흔들렸다. 동료는 핸들을 꼭 붙잡았다.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깜박거렸다. 서치라이트(상향등)를 켜고 불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순간 숨이 멈췄다.


 “앞에 차가…!”


승용차가 고속도로 위에 뒤집어진 채 비상등이 깜빡였다. 순간, 동료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핸들을 갓길이 있는 우측으로 돌렸다. 차가 심하게 휘청거렸다. 거의 뒤집힐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우리는 사고 난 차량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동료는 갓길에 차를 세웠고,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119를 눌렀다. 나는 뒤로 돌아보며 뒤집어진 차를 보았다.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통해 빠져나오려고 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동료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해요, 차 안에 있어야 해요!”

 “뒤따라 오는 차를 세우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다칠 거예요. 일단 119에 전화하세요. 저는 앞으로 가서 차를 세울테니깐요.” 


 나는 사고 차량 앞으로 뛰어갔다. 동료는 119에 전화를 한 뒤에 사고 차량으로 향했다. 동료가 운전사를 끌어내는 동안 나는 차를 멈춰세워야 했다. 가로등 불빛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핸드폰 창을 열었다. 작은 불빛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겨울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고 손과 코끝이 시렸지만 핸드폰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아직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뒤집어진 차를 보았다. 하얀색 쏘나타 승용차였다. 중앙 분리대에 심하게 긁힌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 위에는 깨진 유리창이 흩어져 있었고, 차 속에서 튕겨 나온 물품들이 도로 위를 어지럽혀져 있었다. 아마도 졸음운전을 했거나 강풍에 중심을 못 잡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 동료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운전사를 끌어내고 있었다. 


 잠시 뒤 도로 위에 불빛이 나타나 그림자를 길쭉하게 만들었다. 동료와 사고 차량 운전사는 아직도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주 오는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두 팔을 더 빨리 흔들었다.

멀리서 브레이크 밟은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승용차였다.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눈이 부셨다. 차에서 서치라이트가 몇 차례 켜지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차는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뒤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동료는 다친 운전사를 갓길로 옮겨 놓았다. 검은색 승용차 운전자가 창문을 열어 나에게 소리쳤다.

 

 “죽으려고 작정했어! 도로 한가운데서 서 있으면 어떻게 해. 미친 거 아냐”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다시 소리쳤다.

 “앞에 쓰레기를 치워야 지나갈 거 아냐!”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검은색 승용차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물품을 이리저리 피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기분 나빠할 여유조차 없었다. 바로 이어서 또 다른 불빛이 다가왔다. 이번 서치라이트 불빛은 더 크고 강렬했다.


 나는 다시 핸드폰 불빛을 흔들었다. 하지만, 불빛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조금 전 흔들었던 팔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춥기도 했지만 두려웠다. 더는 도로 가운데로 나가지 못하고 갓길에서 손만 높이 든 채 몸이 얼어버렸다. 브레이크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고 불빛은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고속버스는 간신히 멈춰 섰다. 조금 전 운전기사처럼 욕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괜찮아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버스 기사는 차에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뒤쪽에 삼각 안전판을 세웠다. 버스에서 승객들도 하나둘씩 내렸다.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젊은 양반이 우리 목숨을 구했네. 여보, 휴게소에서 당신이 큰소리쳤던 그분이에요.”

 나에게 소리쳤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해서인지 더는 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미안해서 내 눈을 바라보지 못했지만 또다시 불빛이 다가오자 나와 함께 뛰어갔다. 모두 슈퍼맨으로 변신한 것처럼 뒤에 오는 차량을 함께 세웠다. 119 응급차가 도착하고 나서야 동료가 생각났다. 나는 동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포옹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다시 숨 쉬는 기쁨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손과 발이 춥다는 느낌이 이렇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경찰이 도착해서 사고 차량과 주변을 정리했다. 우리는 버스 승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정화조 차에 올라탔다. 동료가 말했다.


 “조금 전에 차 세울 때 무섭지 않았어요?”

 “무의식적으로 달려갔던 것 같아요. 처음엔 겁도 없이 차를 세웠지만 큰 버스를 세울 때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럿이 함께 차를 세울 때는 무섭지 않더라구요. 누구나 마음속에 히어로 하나씩은 숨겨 놓고 사는 것 같았어요." 


 차를 멈춰 세우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와 동료, 뒤집어진 차량 속에 운전자, 그리고 버스 운전기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버스 승객들과 수십 대의 차를 멈춰 세운 그 순간에도 서로를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인연일지 모른다. 매 순간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 두자. 길 가에 핀 작은 풀꽃에도 말이다.


 


이전 10화 똥벼락 맞아본 적 있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