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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똥벼락 맞아본 적 있니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들이 어쩌면 나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것과 공감하고 희열을 느낀다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  


  미생물은 시간이 갈수록 왕성하게 자랐다. 이제는 실제로 폐수를 투입해서 분해해야 했다. 정화조 차에는 똥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장지뿐만 아니라 생리용품, 콘돔, 인간과 동물의 몸에서 소화되지 않는 씨앗들도 함께 들어왔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선별 기계가 고장 나서 찌꺼기들이 폐수처리장 수면 위로 둥둥 떴다. 찌꺼기는 미생물 분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건져 내야만 했다. 머리에 안전모 대신 둥근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빨간 고무장갑을 꼈다. 그다음 긴 막대기 끝에 뜰채를 묶어서 찌꺼기들을 건져 올렸다. 뜰채가 수면 위를 훑고 지나가면 수많은 찌꺼기가 올라왔다. 빨간 고무 대야 위로 뜰채에 담긴 찌꺼기를 털어냈다. 쓸모없는 찌꺼기를 건지는 내 모습을 보며 나 자신도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찌꺼기 중에 제일 많은 것은 씨앗이었다. 건져낸 씨앗 중에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을 닮은 것도 보였다. 스타워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주선인데, 절대 파괴되지 않는 생명력이 긴 우주선이었다. 혹시 씨앗 안에 누군가 타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얼마 전에 새로 산 핸드폰을 이곳에서 떨어뜨렸다. 일주일도 사용하지 못하고 나를 떠나서인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씨앗을 타고 폐수 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내 몸의 절반이 폐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의식하고는 깜짝 놀랐다. 햇빛을 오랫동안 쫴서인지 정신이 혼미했다.. 작업이 끝나고 씨앗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그리고 그들을 길가에 있는 조그만 텃밭에 심었다.


 며칠 뒤 새로운 운전기사가 정화조 차에 똥을 가득 싣고 왔다. 그는 처음 폐수처리장에 와서 어떻게 호스를 연결하는지 몰랐다. 내가 대신 투입구에 호스를 연결해야 했다. 어깨 넘어서 보았지 직접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운전기사는 불안했는지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졌다. 나도 연결했을 때 뭔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들었지만, 펌프의 녹색 버튼을 자신 있게 눌렀다.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나더니 갑자기 투입구 빈틈으로 똥물이 분출했다. 빨간색 버튼을 눌렀지만 이미 똥물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뒤였다. 똥물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나와 운전기사 머리 위로 쏟아졌다. 똥물은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렸고 가슴과 등까지 감싸버렸다. 눈과 입을 꼭 닫고 숨을 멈춘 채 발은 땅에 붙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무실에 있던 동료가 뛰어나왔다.

 “거기 그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동료는 호수를 가져와 물을 뿌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옷을 하나씩 벗었다.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끈적한 감촉과 지독한 냄새로 숨이 막혔다. 마지막 누런 양말까지 벗어냈다. 웅크리고 앉아 물줄기를 맞았다.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운전기사는 서로 마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동료는 알몸으로 앉아 있는 나에게 비누와 수건을 주었다. 비누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 어떤 향기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뼛속까지 향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동료는 물 호수로 바닥과 주변에도 물을 뿌렸다. 조금 전 불쾌했던 감정들이 똥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다. 

똥물이 스며든 시멘트 바닥 틈새로 작은 풀꽃이 보였다.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름 모를 풀꽃이 눈에 들어왔다. 쓸모없는 풀꽃이라 여겼는데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온 모습이 경이로웠다. 풀꽃이 나를 보며 노래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향기를 전하는 작은 풀꽃의 이름이 궁금했다. 비처럼 물을 뿌려서일까? 물줄기 넘어 무지개가 나타났다. 무지개는 맑은 하늘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한바탕 물줄기가 쏟아지고 나서야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어두웠던 내 마음에도 밝은 풀꽃이 들어와 무지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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