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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17. 2019

나는 왜 자살하는 것인가

 네가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오늘은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로 해마다 인구 10만 명당 26.5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 하루를 더 살고 싶었던, 한번만 더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속을 유유히 빠져나와 혼자만의 죽음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왜 자살하는 것일까?
 
자살의 네 가지 유형
 
자살에 대한 사회학 분석서인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자살론(Le Suicide)]에 의하면 자살에는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아노미적 자살과 숙명적 자살이 있다. 물론 뒤르켐의 이론은 1세기도 훨씬 전에 확립된 것으로, 현 시대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긴밀한 관계에서 오는 교류와 소통의 불균형이 결국 자아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은 사회학 뿐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뒤르켐이 말하는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이란, 사회적 구성원으로써의 존재 확립에 실패한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의한 자살을 말한다. 이들은 공동체 활동이 미숙하거나 이를 거부하며 혼자라는 장막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문제를 ‘나’ 아니면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결국 책임을 지는 삶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이란, 공동체에 지나치게 동화되어 자신과 사회적 유대관계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일본의 ‘가미가제’같은 자살특공대나 신앙심에 의한 집단자살과 자살 테러범, 명예 자살이 이 같은 경우이다.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에서 ‘Anomie’란 무법, 무질서의 상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가 어원으로, 뒤르켐이 [자살론]에서 근대사회학 용어로 처음 사용했다. 아노미 상태는 사회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뒤르켐에 의하면, 사회적인 진보와 발달은 구성원들의 유기적 연대(有機的連帶)를 강화하지만, 개인의 이상(異常)상태에 있어서는 사회적인 의존관계가 교란되어 아노미 상황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표면적으로는 삶을 윤택하고 발전시키지만 순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사회질서의 붕괴와 도덕적 해이는 극적인 불안과 양극적 동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커다란 재앙을 겪은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정신적인 해체 상태이다. 이때 느끼는 인간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은 삶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이란, 타자의 죽음과 자신을 일치화하는 것으로, 고대의 계급제도에서는 순장(殉葬)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순장은 문명과 신분질서가 확립되고 가부장(家父長) 질서가 확립되면서부터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는 장례 풍습의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수메르와 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이집트, 중국의 상왕조(商王朝)에서 순장 풍습이 발견되었으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천왕이 죽었을 때에 가까이 모시던 신하들 중에는 왕을 따라 죽어 함께 묻히려는 자가 많아, 중천왕(동천왕의 아들)이 이를 금지하였다. 하지만 장사하는 날에는 무덤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모방 자살과 베르테르 효과
 
숙명적 자살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봤을 때, ‘베르테르 효과’ 역시 이 숙명적 자살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을 하는 것을 모방하여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증하자 유럽에서는 책의 발간을 중단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처럼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이에 동조하여 일반인들의 자살이 급증하는 것을 ‘모방 자살(copycat suicide)’이라고 하며,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lips)는 이러한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사회적 불안과 경제상황도 자살률을 높이는 큰 이유이다. 실업률과 빈부의 격차가 심할수록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극단적으로 택하는 방법이 자살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한번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람은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자살 시도자의 30퍼센트는 1년 내로 또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자살은 주변의 6명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쳐 모방자살을 발생시킬 우려가 크다.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의 보상심리가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죽음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을 전가하는 것으로 복수를 하려는 심리이다. 두 번째는 사후세계에 대한 환상이다.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해 사후 세계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지순한 사랑의 슬픈 결말이자살로 나타난다. 세 번째는 자아에 대한 심판이다. 결벽증이나 강박증이 있는 경우 더 심해지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단죄가 결국 자살로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게임속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셋 증후군이다. 컴퓨터를 리부팅 하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는 것이다.
 
스타들의 자살 그 찬란한 쓸쓸함과 견딜 수 없는 허무함
 
가수 서지원은 1976년 2월 19일 서울특별시에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존버로즈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귀국해 1집 앨범 'Seo Ji Won'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받은 뜨거운 관심과 인기가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힘든 역경이었던 서지원은 2집 앨범과 팬들의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1월 1일 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같은 해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이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등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노래들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김광석.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되어 지금도 김광석과 그의 음악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1990)에서 고독한 방안에서 혼자 ‘Maria Elena’의 음악에 맞추어 맘보춤을 추던 장국영은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그는 발 없는 새처럼 호텔 24층에서 땅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내가 너무 늦게 왔지?”라는 대사를 하는 이은주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2001. 김대승 감독 이은주, 이병헌 주연)는 죽음마저 거스른 운명적인 사랑의 슬픈 재회를 그린 환타지 멜로 영화이다. 입영 영차를 타기 전에 만나기로 했던 소녀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학교 선생님이 된 소년의 앞에 제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17년 전에 죽은 여자친구가 자신의 제자로 환생했다는 것을 확신하는 인우의 절망 속에 싹트는 그리움의 감정이 고스란히 흐르던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 (Dmitri Shostakovich, Suite for Variety Orchestra)은 영화를 본 후에도 가슴 속에 아프게 남아 해변에서 춤을 추던 이은주의 아름다운 미소를 떠올릴 때마다 더욱 가슴이 아련해지던 곡이다.
이은주는 개성 있고 훌륭한 연기로 많은 영화와 작품들을 남겼지만 2005년 2월 22일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식욕부진과 불면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너무도 급작스러운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은주의 죽음 이후 자살자가 급등했다. 베르테르 효과였다. “저런 유명인도 죽는데 나 같은 것쯤이야.”라는 생각이 계속 번져나갔다. 2008년 최진실의 자살사건 후에는 평균 자살률보다 무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쇄 자살을 했다.


자살은 당면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프로이트의 말에 의하면 상처받은 사람의 분노가 대상을 잃고 자기 자신을 향할 때 그 가장 잔인한 복수의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단죄는 절대 정당할 수 없으며, 그 처벌이 갖는 책임의 상실이란 사실 살아남은 주변인들이 지고 가야할 절대적인 문제인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삶’이다. 나는 실수를 할 수 있고 나는 때론 바보같기도 하며 때론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넘어지면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 다시 걸으라고 내겐 두 다리가 있다. 다리가 없으면 두 팔이, 두 팔이 없으면 기운 좋게 뛰고 있는 심장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들 살아간다. 그렇게도 살아간다. 지금 엎어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당신에게 그래도 다시 걸으라고 말하고 싶다. 못난 놈들 코골며 잠든 새벽 제일 먼저 일어나서 걷는 당신이기에 첫 번째로 뜨는 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그 햇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오늘은 또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안고 그렇게 가을을 맞이한다.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이여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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