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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Jun 26. 2023

내 인생의 영화1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내 인생의 영화1-<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대만이 낳은 세계적 거장 에드워드양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여러 번에 나눠서 보았다. 이미 한두 번 본 영화지만 다시 보아도 역시 뭉클하고 찌릿했다. 대만의 굴곡진 현대사를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담아낼 수도 있구나 싶다. 잘 알려진 타이베이 3부작과 데뷔작 <해변의 하루>, 그리고 유작이자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명작 <하나 그리고 둘>까지 에드워드양의 영화들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주로 동시대 타이베이에 사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초상과 인생의 면면을 날카롭게 묘파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 면에서 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좀 예외적인 영화다     


  영화는 1959년 실제 대만에서 일어났던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소년과 그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대만의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좀 더 깊게 보아내려면 대만의 역사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데, 1949년 이후 본토에서 대만으로 들어온 외성인들과 원래부터 대만에서 살고 있던 본토인들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당시의 양안관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 정권을 잡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가고 다른 한편 일제 식민시절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있다. 상하이에서 건너온 샤오스의 가족, 고향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나약한 지식인 아버지와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해 보려는 어머니, 그리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네 자녀, 영화는 그중 막내인 샤오스의 일상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지금은 세계적 스타가 된 대만 배우 장진이 앳된 10대 소년으로 주인공 샤오스를 맡아 열연했다. 극중 형과 아버지가 실제로 장진의 형과 아버지라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무튼 한창 예민하고 사랑을 받아야 할 막내이자 중학생 샤오스는 그러나 전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재밌고 할기차야 할 학교 생활 또한 전혀 그렇지 않고 마치 어른들의 조직 폭력배 세계처럼 그려진다. 소공원파니 217파니하는 소년들의 패거리 사이에선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벌어진다. 이성과의 감정도 그렇다. 풋풋하고 가슴 뛰는 첫사랑이 아니라 니것 내것 하며 여러 명이 얽히고 설킨다. 샤오스와 친구들이 그나마 즐거운 순간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듣거나 따라 부르고 어설픈 춤을 추거나 체육관에서 농구공을 튀기는 정도였을까.      


  본토의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히고 어딘가로 잡혀가 과거 행적에 대해 집요하게 조사당하는 아버지는 이후 점점 망가져 가고, 가족 구성원 모두 답답한 현실에 발목 잡혀 뻗어나가지 못한다. 막내 샤오스는 공부도 우정도 이성에 대한 희망도 다 망가져버리고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친다.      


  데뷔작 <해변의 여름>에서 이미 빼어난 미장센과 음악으로 큰 감정적 울림을 주었던 에드워드양은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유려하고 빼어난 화면을 4시간 내내 선사한다. 주인공 샤오스와 밍의 연기도 더 없이 자연스럽고, 친구들, 소년들의 연기도 좋다. 영화는 살인사건 자체보다도 시대의 모순과 혼란, 암울한 당시의 공기를 총체적으로 조감했다고 보여진다. 담담한 가운데 훅 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처럼, 담백함 속의 슬픔이 돋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친구이자 또 다른 대만 뉴웨이브 거장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함께 본다면 대만의 굴곡진 현대사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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