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랑이다-<연인
누군가 나에게 좀 수준 있는 멜로, 혹은 에로 영화에 대해 묻는다면 몇 편의 영화를 꼽겠다. 그중 한편이 바로 이 1992년작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이다. 홍콩배우 양가휘, 그리고 프랑스 여배우 제인 마치의 인생작이기도 할텐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온다.
1992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던 그때, 내 나이 갓 스물이었다. 당시의 나로서는 거의 실제에 가까운 수위높은 러브신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강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인도차이나를 가로지르는 메콩강의 그 광활하고 수려한 풍광이 인상 깊게 와 박혔다. 물론 그때도 그들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 제인 마치의 불우한 가정사,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뭔가 불안불안하고 일 저지를 것 같은 양가휘의 모습에 감정이입되어 가슴아파 했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보는 <연인>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주지하듯 영화 <연인>은 프랑스의 유명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작가 뒤라스의 자전적 체험담을 근거로 만들어진 터라 더욱 생생하고 드라마틱하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대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원작에 못미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 영화는 소설 못지 않은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셀럽들이 그 부분을 높이 사며 인생 영화로 꼽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 <연인>은 그냥 영화 <연인>이다. 소설을 따로 읽을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에서 가난한 프랑스 10대 소녀와 돈많은 부잣집 도련님인 30대 중국 남자가 메콩강 위에서 처음 만난다. 편하게 놀고 먹으며 사랑에 탐닉하던 남자는 10대의 이국 소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사는게 무료하고 고달픈 가난한 10대 소녀는 30대 남자와 처음으로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어찌보면 비현실적이고 또 원조교제나 막장처럼 느껴질법한 소재이지만, <연인>은 에로, 멜로 영화의 영토에 큰 깃발 하나를 꽂은 작품이다.
양가휘의 젠틀하면서도 여릿한 외모와 분위기, 빨려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를 지닌 매혹적인 제인마치의 거침없는 직진은 관객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가슴을 쿵하고 친 몇몇 장면으로 마무리 짓겠다. 메콩강을 오가는 배 위에서, 그리고 본국 프랑스로 돌아가는 큰 배 위에서 풍광을 응시하며 발 한쪽을 살짝 뱃전에 걸치는 제인마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차 밖에서 안에 앉아있는 양가휘를 보며 입술을 가져다 대는 모습도. 마지막으로, 커다란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나가는 제인마치의 무표정한 모습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 아프게 울고 있을 것 같은, 분명 양가휘가 타고 있을부둣가 한켠에 세워진 자동차의 모습이 가슴을 쿵하고 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고 그 세포가 말라가는 이들에게, 그런게 있었나 싶게 메마르고 서걱서걱하는 이들에게,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그까짓게 뭔 대수냐고 말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 바로 <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