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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Feb 16. 2021

중국기행 12

아버지와 떠난 중국여행1

-이박사, 이번 방학 때 뭐해? 시간 좀 돼?

-시간이야 뭐 되죠. 그런데 왜요?

-이번에 나랑 중국 여행 함 갈까?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랑 함께 가느냐도 중요하다. 어느 해 겨울방학, 나는 아버지와 보름에 걸쳐 중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지도 하나 들고 말 그대로 발길 닿는대로의 자유로운 배낭여행이었다. 10여년 전 아버지가 70대이셨을 때다. 보름간 24시간 내내 아버지와 함께 하며 많은 걸 공유하고 또 이야기를 나눈 그때 그 경험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지금도 건강하신 편이고 가끔 가보고 싶은 곳으로 황산 이야기를 하신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번 또 모시고 가려고 한다. 그럴 기회가 꼭 주어지면 좋겠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유교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들은 자랄 때도 그렇고,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아버지와 그리 살갑게 지내지 못한다. 대부분 다 그렇지 않을까. 요즘에야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많이들 노력도 하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중년세대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란 아무래도 좀 어렵고 엄했던 기억이 클 것 같다. 내 아버지와 나도 그랬다. 중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엄격했고 보수적이었다. 사춘기의 나는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고 딱딱했던 학교생활도 영 답답했다. 우리 집 삼남매 중 내가 가장 반항적이고 좀 튀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직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또 나다. ㅋ 조금 나이를 먹고 공부도 더 하고 철이 좀 들고 보니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독립적인 분이지만, 내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에서 보낸 보름 동안은 아무래도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여러 가지를 챙겨야 했는데, 그게 아들로서 기쁘고 또 보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했던 시간은 좋은 추억이 되어 지금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재밌게 나눈다.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그해 겨울의 중국여행을 생각나는 대로 좀 적어보려고 한다. 발길 닿는대로 가되 겨울이니 북쪽보다는 남쪽으로 돌아보자, 정도로 계획을 잡았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로 들어갔다. 배 안에서 저녁으로 복지리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위해까지 비행기로 간다면 아마 1시간이면 가겠지만 배로는 열 댓시간이 걸린다. 배를 타고 인천바다를 벗어나 망망대해로 접어드는 것을 갑판 위에서 보는 건 근사한 경험이다. 또한 컴컴한 밤에 배 밑으로 출렁거리는 짙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 또한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고, 밤 늦도록 배 안의 여러 장소를 누비며 같이 간 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아주 괜찮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은 1996년 이래, 인천에서 출발하는 중국행 여객선을 많이 이용했다. 돌아 올땐 비행기를 거의 탔지만 중국으로 갈 때는 배가 주는 특유의 그 여유가 좋아 많이 애용했다. 그해 나와 함께 떠난 아버지도 위해행 페리호가 두루두루 괜찮다는 평을 하셨다. ㅎ      

      

  다음날 아침 도착한 위해는 작은 항구도시, 시내 쪽을 살짝 둘러보고 간단한 점심을 먹고는 청도로 가는 장거리 버스에 올라탔다. 산동성의 대표적 해안도시기도 하고 대학 친구가 일하는 곳이기도 해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청도에서 1박을 하면서 청도의 명물 잔교와 해안가를 보고, 성당 및 과거 독일 조계지를 좀 걸어보았다. 퇴근한 친구가 와서 한국식당에 가서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었다. 낮에는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밤에 자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러 번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6, 25때 개성서 피난 나온 이야기부터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듣고, 살면서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들, 은퇴 후의 상황들까지 아버지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청도를 둘러본 그날 밤 아버지와 다음 여행지를 정했다.       

-아버지, 이제 공자님 보러 곡부로 갈까요?

-그래, 거기 한번 가보자     


그래, 다음 목적지는 곡부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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