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사회가 가지고 있던 제도, 조직 등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고치거나 변화 시킨 혁명은 한, 두 가지의 원인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류는 자유, 평등, 박애의 현대 민주주의의 발판을 만들게 되었다. 혁명 이전, 여러 가지 불평등한 법률과 세금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는 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소금에 관한 문제였다.
사람의 생존에 있어 소금은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물건으로 프랑스 왕실에서는 1268년 '가벨'이라는 소금 세금을 만들어 국가 통치자금으로 사용하였다. 사람이 살기 위해 소금은 누구나 필요하여 반드시 구입을 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금을 통한 세금 징수는 수월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가벨은 당시 8세 이상의 모든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구입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프랑스 국왕이 정한 가격으로 구입을 하여야 하여 원가에 비해 비싼 가격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 지날수록 오르는 소금세와 대량으로 청어를 염장하게 되자 1630년대에는 소금의 가격은 생산비에 비해 14배로 증가하였으며, 1710년대에는 140배까지 올랐다. 게다가 소금세를 정부 관리자가 직접 징수하지 않고 개인이나 회사와 같은 민간업자를 이용하였는데, 이들 청부업자들의 횡포 또한 만만치 았았다. 여기에 지역에 대한 차별까지 더해져 마치 조선 후기 방납의 폐단과 같이, 20배가 넘는 가격을 강제로 구입해야 했다.
18세기 후반, 돈이 없어 소금을 구매하지 못한 남녀 3,000여 명이 매년 감옥에 수감이 되었는데, 왕족들과 귀족들의 사치로 인해 재정상황이 좋지 않던 차에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는 미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여 전쟁을 치르기 위해 더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프랑스 왕실은 가벨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결국 소금세는 프랑스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사람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여 결국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펼쳐지게 되었고 결국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으며 악명 높았던 가벨은 1790년 폐지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뒤인 1805년 나폴레옹이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부활시켜 실행이 된 이후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에 이르러 완전히 철폐되었다. 시간이 흘러 소금은 다시금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된다. 유럽의 국가의 사람들은 오랜 기간 염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다른 나라에는 거침없이 소금세를 부과하였다. 19세기 영국은 염세를 폐지하였다. 염세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 기인한 바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소금의 역할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산업 전반에 변화를 불러왔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소금은 조미료처럼 음식에 쓰이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로 사용되었기에 자본가들의 강력한 압력으로 염세는 폐지되었다. 영국에서는 소금세가 폐지되었지만 식민지에 대한 염세는 지속되었다.
1930년대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는 바닷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소금을 줍기만 하여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소금은 영국이 정한 가격으로 영국 정부가 지정한 상인으로부터 구입을 해야 했으며 무더운 날씨로 땀을 많이 흘리는 기후상 소금의 섭취는 인도인들에게 중요하다. 인도양에서 나오는 생명의 근원인 소금을 영국으로부터 사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1856년 영국은 인도에 소금 전매 제도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가격을 올려 인도인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30년 3월 12일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의 이러한 소금 제도에 반대를 시작하여 그를 따르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함께 인도의 해안 지방인 단디로 출발했다. 당시 간디는 61세로 무리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으며 행렬은 잠시 멈출 때마다 군중의 수가 늘어 2마일에 이르는 대열이 될 정도로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4월 6일, 3주간 400km의 소금행진 끝에 해안가에 도착하여 소금 한 줌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는 간디의 모습은 독립을 상징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바닷물 삶거나 소금을 줍는 인도인들로 북적였다. 이 소금행진으로 투옥된 사람들만 6만 명이 넘었지만 인도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었고, 무저항, 비폭력의 방법으로 인도의 독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금 행진은 삶의 필수품인 소금에 대해 인도의 독립운동에 그치지 않고 세계 시민 불복종 운동의 의미 있는 선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