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를 열어준 쉽 비스킷(ship biscuit)
비스킷은 라틴어로 두 번 굽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BIS(두 번)+굽다(COCTUS), 밀가루 반죽으로 두 번 구우면 매우 딱딱하고 건조하게 된다. 딱딱해진 만큼 휴대하기가 간편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장거리 행군 중인 군인, 여행객들이 휴대 식량으로 종종 이용하였다.
팍스 로마나로 인해 로마제국 시대에는 장거리 여행과 진군이 있었지만, 제국이 무너지고 치안의 부재로 여행의 범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장거리 이동시 간편하게 먹었던 비스킷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다시금 비스킷이 세상에 집중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 후의 일이다. 15세기 이후 항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좀 더 멀리 항해하는 대항해 시대가 왔다. 항해기간이 길어감에 따라, 가장 중요한 일은 보급품 그 가운데서도 식량 문제였다. 해양에서 식량의 가장 큰 문제는 보존성이다. 육상과 달리 항해 중에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지 한다. 항해기간이 점차 증가하면서 최소 10주에서 수개월이 되며 배 자체가 수분을 흡수하여 식재료들은 수분 때문에 쉽게 변질되었다. 둘째 문제는 불이었다, 당시에는 모두 목조 선박으로 화재의 위험으로 쉽게 불을 사용하지 못했다. 또한 배에 실을 수 있는 연료도 한계가 있어 별다른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선호되었다.
보존성 증가를 목적으로 소금에 절인 고기나 살아있는 짐승을 배에 실기도 하였지만 주식인 빵의 경우가 문제였다. 수분이 적은 빵도 3개월이 채 되기 전에 겉면에 곰팡이가 퍼져 속만 파먹어야 했다. 또한 빵을 굽는 것은 화재 위험이 있고 선체에서는 매우 제약적인 상황으로 모든 승조원들에게 빵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폭풍이 불거나 파도가 거셀 때에도 안정적으로 섭취가 가능한 고형 된 빵 형태여야 했다. 16세기부터 인근을 항해 시 2~3일간은 육지에서 가져온 빵을 먹고 그 이후부터는 쉽 비스킷(ship biscuit)이 사용되었다. 쉽 비스킷은 일반적인 빵과 달리 극도로 수분을 절제하였다. 단순히 밀가루, 물, 소금으로 만든 반죽으로 구운 것으로 일반 빵에 들어가는 이스트나 베이킹소다. 그리고 반죽에 들어가 맛을 부드럽게 만드는 우유, 설탕 등도 배제되었다. 항해에 사용되는 쉽 비스킷은 보존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두 번 아닌 4번을 굽기도 하였다. 비스킷을 깨물기는커녕 손으로도 쪼개기 어려운 상태였다. 특히나 신선한 채소, 과일이 부족하여 괴혈병을 앓기 일 수였던 선원들이 먹기에 매우 고단 한 음식이었다. 많은 선원들은 씹는 어려운 방법 대신, 비스킷을 잘게 쪼개어 소금에 절인 고기와 식초, 물을 넣어 끓여 죽처럼 먹었다. 1677년 영국 해군은 공식적으로 쉽 비스킷을 해상 주식으로 공표하였다.
벽돌처럼 딱딱함 외에도 가장 큰 문제점은 비스킷에 벌레가 몰린다는 것이다. 수분이 거의 없어 곰팡이가 피거나 부패하지 않지만, 바구미(쌀벌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비스킷 사이사이 바구미가 빠끔히 얼굴을 드는 모습에 쉽게 먹지 못했을 것이다. 수병들은 비스킷을 먹기 전에 테이블에 두드리거나 물을 적셔 쌀벌레가 나오게 하기도 하고 일부는 단백질 보충과 더불어 벌레와 함께 먹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그냥 먹기는 그랬는지, 어두운 공간이나 밤에 먹고는 하였는데 쉽 비스킷의 별명으로 "밤에 먹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방충 작용을 한다는 캐러웨이 씨앗을 넣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 worm castle(벌레의 성), teeth duller(이빨 분쇄기) 등의 별명이 추가되었다. 배 안에서 쉽 비스킷이 아닌 제대로 된 빵을 먹게 된 것은 19세기나 되어서야 가능했다. 더 이상 목조선이 아닌 증기선이 주를 이루어 쉽게 취사가 가능해졌고 방부제의 등장으로 오랜 시간 밀가루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 비스킷은 한동안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그래도 쉽 비스킷만큼 보존성이 오래가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1910년이 지나서야 쉽 비스킷은 완전히 항해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해양박물관에 가서야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