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노엘 Aug 25. 2018

동갑내긴데.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지루하고 평이한 일상을 통통 튀게 만들어 버리는 신선함.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양념을 그녀는 기가 막히게 잘 버무렸다. 


나와 같은 나이인 이 아이. 무엇을 먹고 자랐길래, 어떤 것들을 배우고, 하늘을 보면서 멍하니 무엇을 상상했길래, 나와는 전혀 다른 이런 글을 써 내렸을까. 신기하다. 법학도인 나와 문학도인 이 아이의 사고가 비슷하거나 유사하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태어나서 동일한 교육을 받았을 텐데, 이 아이의 머리는 말랑말랑하다. 


만삭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주인공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는 이 곳에 없을 뿐, 어디선가 형광 분홍색 반바지를 입고 달리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주인공은 상상한다. 아비가 죽어서 어머니와 주인공에게 돌아왔을 때도 주인공은 청승을 떨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지 않는 법을 어미로부터 배웠으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어미를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절 엄마가 예뻤다, 라는 말을 아버지가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탄생시킬 만큼 어미를 사랑했던 아비를 생각한다. 한 때 아비는 그리도 열정적이었다면서. 그리고 그녀는 끊임없이 달리는 아버지에게 인심 쓰는 냥 선글라스까지 끼워 드린다. 까막눈과 다름없는 어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영어 편지를 두툼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든 말든.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곧잘 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새끼가 속도 깊고 예의까지 발라버리면 어머니가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어머니 역시 미안함에 내게 돈을 더 준다거나 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지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라. 아삭하고 쌈빡하다. 


그리 섬세할 것 같은 외모는 아닌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데까지 머무른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편의점을 통해 익명의 고독과 개인의 고립과 같은 거창한 개념을 멋지게 표현했다. 


그런데 큐마트를 오래 다니다보니 나는 뜻밖에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내 정보들이 매일매일 그가 들고 있는 바코드 검색기에 찍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그는 나의 식성을 안다. 대여섯 종류의 생수 중 내가 어떤 물을 가장 좋아하는지, 자주 사가는 요구르트가 딸기맛인지 사과맛인지, 흑미밥과 쌀밥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등을 말이다. .... 그는 나의 생리주기를 안다. 그는 정기적으로 생리대를 사가는 나를 본다. 그는 콘돔갑을 뒤집어 계산대에 올려놓는 나를 본다. 그는 나의 식생활에서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고'있다. 


"저...... 아시죠?"
그는 도시락을 쥔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이 근처에 사는... 항상 제주 삼다수랑, 디스플러스랑 사갔었는데...."
청년이 계속 모를 듯한 표정을 짓자, 나는 조바심이 났다. 
"깨끗한나라 화장지랑, 쓰레기봉투는 꼭 10리터짜리만 사가고, 햇반은 흑미밥만 샀는데... 모르시겠어요?
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취중에 함께 하룻밤을 보낸 여자를 기억해내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


매일 편의점을 들락날락 하지만 나의 편의점과 그녀의 편의점은 같은 공간이 아니다. 나의 편의점은 오늘은 어떤 과자를 먹을까, 커피를 마실까 주스를 마실까 정도를 고민하는 장소다. 그녀의 편의점은 당연히 나를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친구에게 한 번에 배신을 당하는, 따뜻한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냉동고와 같은 곳이다. 그녀와 나는 동갑내기가 확실한데, 그녀에 비하면 나는 너무 유치하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이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나도 이런 사람인데. 그럴 땐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구나. 


사소한 데에 신경을 쓰게 되면 사람이 예민해지고 다소 우울해지기 쉬운데 그녀는 예민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발랄함도 잊지 않았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평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을 끄집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뭘까, 이 아이. 다음이 또 기대된다. 


이전 07화 또, 봄이 오려나 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