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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Nov 24. 2023

사이다 2탄, 비법은 시간입니다.

사이다 본고장 Hereford에서의 일주일


걷다 보면 달달한 사과 냄새가 난다.
꿩이 날아가고 토끼가 뛰어다니는 곳, 알파카와 양들이 풀을 뜯는 이곳은 사이다를 만드는 사과 농장이다.


사이더리가 가장 바쁜 달은 9-12월이다. 가장 바쁜 시즌인 지금, 사이다의 본고장 헤레퍼드에 와있다. 일주일간 Ross on Wye Cidery에서 사이다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쉽게만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사과 수확철이 되면 농장 가득 떨어진 사과들을 모아다가 적당한 시기에 즙을 짜야한다. 그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게 노하우인데, 어느 정도 살짝 숙성돼서 물러져야 즙도 잘 나오고 당도도 높아지며 풍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숙성되면 당분이 전분으로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 여기부터 사이다 만들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사과즙을 짤 시기가 오면, 먼저 물로 세척을 하면서 나뭇가지, 잎 등 이물을 제거한다. 세척용 세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사과 껍질에 붙어있는 자연효모가 제 역할을 잘해야 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과를 잘게 썰어 즙을 짜주는 대형 기계에 사과를 넣어준다. 글로 적으니 참으로 간단한 과정인데, 3-5천 리터를 생산하려면 4-5명이 하루종일 작업을 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일하는 중간에 마시는 따듯한 홍차 한 잔이 몸을 녹여주었다. 한 번은 블랙으로, 한 번은 우유 살짝 타서 마시고. 당이 떨어지면 설탕도 휘저어서 타준다. 아침과 아점 사이, 점저 사이까지 하루 세 번은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 사람들의 티타임 문화를 여기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발효조가 꽉 차도록 사과즙을 채워주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사과주를 만드는 덴 사과즙 말고는 다른 재료가 필요하지 않다. 공기와 접촉하면 식초로 변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에어락을 꽂아 놓고 공기가 닿지 않게 보관해 주면 된다. 다만, 균형 잡힌 맛이 되기까지 시간이라는 부재료가 필요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하다. 원리는 간단한데 맛있게 만들기는 어렵다.


사과라고 다 똑같은 맛이 아니다. 종류에 따라, 시기에 따라, 그리고 그 해의 계절에 따라 맛이 매번 달라진다. 여러 종의 사과를 다른 비율로 블랜딩 하면 또 새로운 맛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매년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고 있어 판매 중인 제품만 60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지금도 농장에 새로운 종의 사과를 심고 5년 뒤, 10년 뒤 만들 사이다를 생각한다. 솔직히 부럽다. 여긴 집과 농장, 사이더리, 펍, 캠핑 부지 그리고 게스트용 별채가 있다. 그리고 매년 여름에 하는 축제 때는 각지에서 사이다 팬들이 몰려와 다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 문화도 있다. 하지만 두 세대에 걸쳐 일궈온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을 쉬이 탐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그만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 발효는 시간이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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