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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감성 Apr 25. 2019

제가 주문한 거 아닌데요

삐죽한 파를 눕혀둘까 했는데 잘생긴 파가 "왜 내가 부끄러워? 내가 장미꽃이라 해도 눕혀 둘 거니?" 하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꽃다발같이 예쁘게 세워두었다.
웬만하면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나는 뜨겁고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나는 아이 등교 후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아침 일찍 장을 보고 잠시 작업을 위해 던킨에 들어갔다. 나는 고스란히 돈을 다 내고 커피숍을 가지는 않는다. 맛있는 커피는 집에서 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에 솔직히 커피값이 아깝다. 내가 커피숍을 가는 이유는 가끔 작업을 위해 잠시 분위기 전환용으로 새로운 작업실이 필요할 때다. 그래서 내가 커피숍에 갈 때는 쿠폰이 있을 때다. 요즘 인터넷 X 쇼핑에서 매주 월요일에 선착순 50% 할인 커피 쿠폰을 판매하기에 사둔 쿠폰이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이거요" 나는 핸드폰으로 모바일 쿠폰을 보여주었다.


"진한 거 부드러운 거 어느 것으로 하시겠어요?" 점원에 예쁘게 방긋 웃으며 물어본다.


"진한 걸로 주세요" 나도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주문을 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원래는 영수증을 꼭 다 받는데 오늘은 받고 싶지 않았다. 환하게 미소 지는 점원 덕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냥 왠지 영수증 출력의 수고로움 같은 것이라도 줄여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커피가 나왔다. 기다란 투명 한 잔에 분홍 빨대가 꽂힌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원해 보인다. 아니 추워 보였다. 벌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숍에 있는 사람은 딱 4명 그중에 주문한 상품을 기다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두 명,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았으니 저 사람인가 보구나 생각을 했다. 그리고 힐긋 쳐다보고 다시 책을 보며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시 부른다.


"준비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음.. 왜 저 사람은 자기가 주문한 메뉴를 안 가져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점원이 나를 콕 찍어 바라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네? 저요? 제 건가요?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한 적이 없는데요?!" 놀란 표정으로 물어봤다.


"주문하셨습니다. 결제하신 쿠폰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습니다." 당황한 밝은 표정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아... 네... 전 뜨거운 건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결제한 쿠폰을 확인해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적혀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움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런, 순간 참 경우 없는 손님이 된 느낌이 들었다. 누가 그런 행동을 하나 했더니 그게 나였다.  당연히 핫 아메리카노라고 생각한 나의 불찰이다. 영수증을 받았으면 미리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오늘따라 받고 싶지 않더라니. 살다 보면 그냥 의례 당연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섭섭해할 때가 있다. 당연한 건 없는데.


생각지도 않게 마시게 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뜻밖에 맛이 좋다. 가끔 계획에서 벗어나 발생한 예상 밖의 일들은 삶의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아직 4월인데 벌써 성큼 여름이 온 듯 더워졌다. 벌써 가게 안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춥다. 에어컨 바람이 어서 집에 가라고 재촉하는듯하다.


삶은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오늘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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