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감성 May 09. 2019

임신과 커피

하루 1잔은 괜찮다

리스토란테에오에서 만난 모스카토 그라파(Moscato Grappa)에스프레소에 분사해서 마시며 커피 향미가 더 풍부해지게 하는 브랜디다.


2012년 우리 부부는 캐나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언제쯤 휴가계를 올리나 고민을 하는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두 달째 생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음... 이 느낌은 뭐지... 설마... 아닐 거야!'


남편에게 말했다.


"두 달이 지났는데 생리를 안 해!"


"임신 테스트기 사서 해봐"


"에이 말도 안 돼. 그럴 일 없어 안 할 거야! 돈 아까워..."


그런데 결재도 올려야 하고 비행기 표도 구입해야 한다. 만일 느낌이 현실이라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러나 혹시 모르니 그래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자. 그래서 퇴근길에 임신 테스트기 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첫 소변으로 테스트해야 정확하다고 설명서에 적혀있다.


새벽 5:30 눈이 번쩍 뜨인다. 임신 테스트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나 보다. 말도 안 돼! 말은 안 되지만 절차야 여행을 가기 위한 절차! 그래...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인생에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신랑도 아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우리 인생에 아이가 같이 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린 늦게 결혼을 했고 그냥 둘이 즐겁게 자유롭게 즐기며 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있다.


아닐 거야 말도 안 돼!라는 생각으로 테스트기를 개봉했고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 짧은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잠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한 줄... 그리고 점점 한 줄이 더 진해지고 있다 두... 줄...? 음.. 이거 뭐지? 잘못된 걸까? 다시 설명서를 본다. 두 줄이면 이... 임신인데...? 이... 임신이라고? 내가? 당황스러웠다. 내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여보, 두 줄이야. 임신인가 봐..."


"그래? 퇴근하고 병원 가봐"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에게 감사하다는 생각보다 당황스러움이었다.


퇴근 후 병원을 가기 전까지 머리 안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내 인생에 아이라니 내가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다른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머리 안은 매우 시끄러웠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신랑은 기도를 드렸었다고 한다. 이쯤이면 아이가 생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라고...


"임신입니다. 9주 네요. 어떻게 여태 모르셨습니까?!" 의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초음파를 보는데 2.06cm라는 아이는 신기했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산모수첩과 육아지원금 카드 신청이 진행되었고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캐나다 여행은 물 건너 갔다.

생각해 보니 요즘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우유나 주스를  사 먹고 있었다. 나만 느끼지 못했을 뿐 내 몸은 이미 아이를 보살피고 있었다. 아니 내 아이가 스스로 자기 건강을 챙기고 있었다.


임신 소식을 알기 한 달 전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마신 마지막 에스프레소

거의 커피 중독인 나에게 엄마는 커피를 좀 끊어라며 종종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나 임신 후엔 커피 향이소량 들어간 쿠키도 먹을 수 없었다. 무심코 먹은 쿠키에 속이 좋지 않아 성분표를 찾아보니 커피가 극소량 첨가되어있었다. 나는 십 개월 동안 커피 향에만 후각이 극도로 예민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커피를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출산 후에도 한 1년 정도 커피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는 뱃속에 아이가 효자라고 하셨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센스쟁이 동생이 오르조라는 커피맛 보리차를 보내주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오르조는 유기농 보리로 만들어진 보리차다. 신기하게 이 보리차는 커피와 맛과 항이 유사한데 몸에서 거부하지 않았다. 이게 진짜 커피인지 아닌지 뱃속에 아이는 정확히 감별했다. 오르조는 이태리어로 보리를 말한다. 오르조의 유래는 유럽에서 커피가 사랑받던 시절,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을 지배하면서 대륙 봉쇄령이 내려지고 커피의 유입이 차단되자 커피의 맛과 비슷한 곡물을 로스팅 하여 차로 만들어 마셨다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에 라바짜 커피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곳 매니저가 본인은 커피를 임신 중에도 편하게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길 임신 중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아이가 눈도 삐뚤게 태어난다고 들었다며 그냥 맘 편하게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임신 중 커피를 마시면 아이가 까맣게 태어난다는 설도 있는데  본인 아이는 예쁜 눈에 피부도 뽀얗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농담 섞인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나는 커피 마니아인데도 자연스럽게 마시지 않게 되어 불편함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아이가 내 몸을 바꿔 놓았던 듯싶다.


그래도 임신 중 커피에 대해 궁금해서 알아봤다. 커피숍마다, 커피 종류, 내리는 방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1잔이 가장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디카페인 커피도 있으나 디카페인 커피는 화학 약품을 사용해서 카페인을 제거한 것이라 자연주의를 지양하는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꼭 마시고 싶으면 임신 중에 1잔 정도는 부담 없이 괜찮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4살 되던 2015년에 캐나다 여행을 갔다 왔다. 셋이 같이 9일 동안!

베네치아의 랜드마크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에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커피하우스로 장 자크 루소, 바이런, 괴테, 바 그 너 등 많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의 토론 장소로 애용되던 곳이다.

나는 이곳에 갔다가 메뉴를 보고 커피 가격에 너무 깜짝 놀라서 구경만 하고 나와서 옆에 다른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셨더랬다. 다시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마실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