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휘 Aug 18. 2020

녹아내리는 천장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석회의 침전
내려앉은 만유인력은
영영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이 되었다

굴에는 탈출구라는 게 있을까
만유인력의 끝은 블랙홀이라는데
끝에는 탈출구가 있다고 유명한 과학자가 말했다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탈출구를 찾아내는데
나는

막힌 입구에서 희미하게 스며 나오는 빛을 애써 외면하고
출구가 있다고 믿으며 계속 전진했다
앞만 보고 전진이 필히 전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
가끔은 뒤를 보며 옆을 보며 전진했다

내려앉은 종유석처럼 올라가다 천장에 붙을 수밖에 없는 막다름을 달려간 석주처럼
하염없이 침강하여 다다른 곳에 과연 빛이 있을까

어떤 영화는 원래 제목이 구원이라는데 배급사가 탈출이라 지었단다
그 탓에 사람들은 누가 언제 탈출할까 숨죽이며 보더란다

비키니가 유혹하는 포스터를 치우면 나타나는 구덩이를 빠져나와 비를 흠뻑 맞으며 자유를 느꼈단
그런 이야기

잠깐

내던진 삶은 구원인가 탈출인가
그것도 아니면

주인공은 스스로를 구원했지만
우리는 탈출을 소원했다

탈출과 구원은 반의어인가

도망쳐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데
입구에 쌓인 돌무더기를 거둘 생각 대신
밑으로 밑으로 끝없이 침강하는 발자국은
탈출을 향한 걸까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바닥 밑에는 또 다른 바닥이
바닥은 천장이 되어
나를 받친다 바닥은 어느새 나보다 높은 곳에

어느새 천장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빛을 내려주소서
용식공을 비추던 랜턴 빛이 깜빡인다

암전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강낭콩에 문신을 새겼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