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한 조각이 되고픈 평범한 디자이너의 이야기
막연하게, 전 모든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스타 디자이너든 예술가이든, 어린 시절의 저는 모든지 할 수 있고 모든지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사회의 문을 열고 치열하게 좌절하며 지쳐있는 제 모습을 마주하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그러한 고통도 이제는 어떤 누군가로서 존재하는 타이틀보다, 세상의 한 조각으로서 기여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과정임을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안녕하세요. 반려동물과 그림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진[Jin]입니다.
제가 그동안 경험하고 느낀 감성과 생각들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공감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저의 경험과 생각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들부터 미술과 그림에 관한 저의 생각과 관점, 더불어 한국에서 미술 작가로 살아가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소소히 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전함에 있어 오랫동안 저의 가슴을 뛰게 한, 단 하나의 문장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해요.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제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이네요. 제가 대학시절, 오랫동안 좋아해 온 브랜드 '베네통 BENETTON'에 관련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디자이너가 있었으니 바로 '티보 칼맨(Tibor Kalman)'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디자인만을 위한 디자인을 비판하고 세상을 위한 디자인, 사회를 위한 디자인, 그리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당시 자극적인 시각에만 빠져있던 저의 머리를 훅 하고 내리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베네통 매거진 '컬러스(COLORS)'의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 자본주의의 꽃인 패션기업이 어떻게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들을 만들고 증명했습니다.
글로벌 패션기업이 아름다운 모델과 상품이 아닌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를 광고에 활용하기도 하고, 에이즈 환자들의 사진을 모자이크화 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사고가 무의미함을 이야기한다는 것. 사회문제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직시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임을 그는 보여주려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은 주류를 위해 존재해 왔기에 그는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과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요. 당시 제가 동경하거나 꿈꾸던 디자이너의 모습 또한 대중들로부터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 굴지의 클라이언트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리기도 했지만 제 꿈의 경계도 딱 그 정도였지요. 하지만 베네통의 기업정신과 티보 칼맨의 행보는 저에게 가보지 못한 세상과 가치에 대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감히 나 같은 사람도 세상의 한 조각을 위해 힘쓰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음을 소망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를 알게 되고 10년이 흘러 사회에서 디자이너의 명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세상의 한 조각을 위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발끝 하나 디디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니터 속 1px과 씨름하며 클라이언트에 고개 숙이고, 야근하지 않는 삶만 꿈꾸던 영혼 없는 사회인의 과정을 지나 다시금 서른이 넘어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니, 정말 다행히도 아직 진실로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지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보답,
이 땅에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위하여.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내 인생의 2막, 진정 꿈꾸던 디자이너로서의 삶의 시작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보답"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 이제껏 살아온 평생 동안 저의 가치관과 인생에 감동을 주고 영감을 준 많은 예술가들. 그들의 좌절, 기쁨과 성공, 열정적인 삶에 먼발치에서만 함께 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이제야 제 자신을 그들의 삶 속에 던져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브런치에 적어갈 이야기들도 이 땅에 살아가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위한 글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예술가들의 영감을 앞으로 보여드릴 제 브랜드에 담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소비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사람을 위한, 아직 사랑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의 예술적 감성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씨가 될 수 있게, 그럼으로써 예술가와 대중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저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디자인은 단지 언어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다.
-티보 칼맨(Tibor Kalman)-
티보 칼맨, 그에게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해서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였으며 진실로 사회가 변화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즉 '디자인'이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이 아닌 내가 바꾸고 기여하고자 하는, 세상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이며 그 언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 디자이너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저는 수많은 세상의 단편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바꾸고 변화시키는 노력에 작은 힘을 실어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