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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구미 젤리와 키커 초콜릿

by 진 JIN

물류 먼지와 쓰레기로 탁해진 매캐한 공기, 경적을 쉴 새 없이 울리는 지게차들과 육중한 바퀴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물류 트럭들. 그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작업자들과 높은 언성으로 지시하거나 독촉하는 관리자들의 목소리와 무전기 소리들. 말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걷거나 뛰는 발소리들.

낯과 밤의 경계가 없고 24시간 백열등의 날 것 그 자체의 빛이 발광하는 이 물류 현장에서는 사람 간 의사소통은 별로 필요도 없고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 간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사람으로 오는 스트레스는 회사 생활을 했었을 때보다 확연히 적었기에 난 생각보다 물류 일에 빨리 적응해 나갔고,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하나 둘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공간이자 산업 환경이기 때문에 사람 간 소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간혹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정이란 편의점에서 개 당 1,000 원 남짓의 쿠키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들을 서로 나누며 '오늘 업무도 안 다치고 무리 없이 잘 끝내자.'라고 주고받는 인사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30대 후반이 훌쩍 넘은 나이를 사는 동안 때묻은 목장갑을 벗고 투박하게 건네주는 1-2,000원짜리 구미 젤리와 키커 초콜릿이 가장 진심 어리고 마음 따뜻한 선물 중 하나였다고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물류 센터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용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출근하는 공시생부터, 입시생 자녀들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나오는 50대 어머니들, 나처럼 이전 커리어의 실패로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온 늦깎이 청년이나 의도치 않은 경력 단절로 마냥 쉴 수만은 없어 짧게 머무르려 오는 사람들과 그리고 더러는 특별한 목표나 목적의식 없이 하루 벌어 다음 하루를 위해 사는 사람들 또한 물류 현장으로 온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은 딱 두 부류였다. 자녀들의 학원비나 가족들의 생계에 좀 더 보탬이 되기 위해 투잡을 하는 한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진짜 어른으로서의 사람들과, 목표가 크든 작든 공부를 하거나 이전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으로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잠시 생계를 위해 머무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현재 나는 왜 돈을 버는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현실 판단과 중심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당시 마음의 방황을 하는 내게 하루 중 5분 10분의 짧은 인사나 대화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


보통 내게 썩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은 사람들은 대게 '매사 부정적이고 남 탓하며 현실적인 목표나 삶의 열정도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보통 무리 지어 다니며 험담을 하거나 목적 없이 써댄 카드값을 메꾸려 어쩔 수 없이 일을 나온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열심히 해봤자 내 몸만 축난다며 노동의 불성실한 태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매일 일한 값을 현금으로 또박또박 주고 주 3일이든 4일이든 5일이든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장점도 많은 곳임에도(물론 물류 현장직은 근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 일을 대충 하거나 출근 노쇼가 쌓이면 다음 번 출근 확정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모든 조직 사회에서 근태만큼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늘 불만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엔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끼리끼리 다닌다'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닌 것이다.


나는 당시 현실의 뚜렷하고 긍정적인 목표보단 다음의 살 날이 있으니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태도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말을 잘 섞거나 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해야 될 일을 묵묵히 열심히 했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눈 밖에 날 행동을 스스로 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주목받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자주 얼굴을 보는 몇몇 사람들과는 최대한 밝게 인사하려 노력했었다.


그중 나와 인사를 자주 나누던 중년의 여성분이 계셨는데 당시 현장에서 일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내게 구미 젤리 한 봉지를 건네주시면서


"효진 씨 보면 항상 열심히 일하더라. 이거 하나 먹어요. 여기서 일할 땐 필수야."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서 일한 지 효진 씨도 한 달 정도 됐나? 난 그래도 꽤 됐어요. 1년 다 돼가니까. 힘들지 않아요?"

안 그래도 급하게 달달한 간식이 생각났던 참에 얼른 입에 구미 젤리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듯이 한가득 우물 우물 먹은 다음 메인 목을 가다듬고 대답을 했다.


"안 그래도 아까 자키(화물 하역 운반 기구) 끌면서 힘 많이 써서 당 떨어졌었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다음번엔 저도 간식 가져와서 드릴게요. 그리고 힘들긴 한데 생각보다 제 몸이 빨리 적응해서 놀랐어요. 물류 일이라는 건 제가 살면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휴 나도 마찬가지야, 나 처음 여기서 일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에 구석에서 펑펑 울었다니까. 애들 학원비 벌러 왔는데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돼'라면서 하루 만에 그만두려고 했었어. 근데 하루만 버티자가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그러다 보니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네."

하면서 밝게 웃어주셨다. 그러고는


"애 둘이 하나는 중학생, 하나는 고등학생인데 이제 점점 학원비로 나가는 돈이 가시적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게 보이더라고. 그리고 단돈 만 원을 벌더래도 내가 벌어서 가끔 나가서 커피라도 사 먹고 빵이라도 사 먹는 소소한 자유를 누리는 거, 무시 못 해. 남편이 그간 가족생활비에 관리비에 이것저것 나가는 돈 다 감당하다가 애들이 점점 입시생이 되어가니까 학원비까지는 어떻게 내가 무조건 의지할 수가 없겠더라. 그런데 내가 커피나 빵값까지 달라 그러겠어."


"저는 여기서 가정도 있으시고 자녀와 배우자분 챙기는 것도 힘들 텐데 새벽까지 나와 일 나오시는 부모님들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가장 힘든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돈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고요. 나는 내 몸 하나 챙기고 열심히만 해도 힘든데.. 우는소리 그만해야겠구나 하고 느낀 점들이 많아요."

하면서 다 먹은 구미 젤리 비닐 포장지를 꼼지락거리며 조금 쑥스러운 듯이 대답했었다.


"하나 더 먹어. 여기. 이런 곳에서는 주고받을게 이런 간식들밖에 없네. 그리고 효진 씨도 무슨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나 일이 있다 그랬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멋지네. 잘될 거야."

라는 말과 함께 무심히 키커 초콜릿 바 하나를 더 내 손에 쥐어주시고선 쉬는 시간이 끝나가니 이제 출고 포장대로 가야 된다며 인사를 하셨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위로를 받았던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안온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급스럽고 찬란한 햇살이 드리워져 있는 환경이 아니라, 깨끗하고 세련된 도로들과 고층 빌딩 사이를 걸어 다니며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나 직장인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소통과 안정된 환경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밝히는 24시간 백열등이 날 것의 빛을 뿜고, 먼지와 땀과 때묻은 목장갑과 세상에서 가장 크고 시끄러운 트라이앵글이 있다면 이런 소리들을 낼 것 같은-날카롭게 연주하는 듯 끊임없이 들려오는 쇳소리들의 음률들이 있는 곳. 무감각의 철제 물류 도구들과 운반 수단들이 주인인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잠시 건네는 1,000원 남짓의 저렴한 구미 젤리와 키커 초콜릿으로 하루를 응원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복 돋워 주는, 내가 만난 소수의 사람들.



먹고사는 것이 전부인 듯 보이는 곳에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삶의 치열한 환경에서 버티는 것의 의미를 주었던 두 아들을 둔 엄마의 웃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예쁘고 멋진 것을 쫓고 누리고 살고 싶어 무모하게 도전하고 실패했던 지난 시절보다 가장 삶의 어둡고 힘든 바닥에서 알게 된 가장 값진 의미에 대한 것. 누구나가 우러러보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고군분투하던 디자이너가 깨달은 진짜 브랜드의 의미.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가장 작은 것들, 남들이 가치 없다 느끼는 것들의 본질을 알게 된 그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가 평생 배우고 추구해온 수준 높은 디자인과 브랜드의 본질을 1,000원짜리 구미 젤리와 키커 초콜릿 바 하나로 깨달았다는 것이.


우주의 따뜻함은 귀천이 없이 어디에도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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