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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외곽의 물류 공장에서 다시 디자이너로, 창작자로

무력과 공허함을 글쓰기로 이겨내기로 결심하다

by 진 JIN

여러 번의 사업들이 실패하고 세상에 숨듯이, 나 스스로를 유배하듯 왔던 경기도 외곽의 한 물류 공장을 시작으로 3~4군데의 물류 센터들을 옮겨 다니며 당장의 생계와 더 깊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몸을 혹사 시켜 온 시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나갔다.


처음 접해본 먼지와 물류 쓰레기와 철제 쇳소리와 스피커폰에서 들려오는 욕과 출고 압박 소리와 교양과 예절보다는 날것의 외침을 처음 경험했을 그땐 '난 절대 이런 세계에서 버티질 못하겠다.'싶었지만 생각 보다 이 세계를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며 어느 순간 같은 직급의 작업자들과 눈도 맞추고 가끔 웃기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에서는 벗어나게 된 신호였다.


하지만 진짜 다시 '나의 일'을 해나가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물류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1년 이상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2024년 6월 상하이로 홀로 향하며 '언제든 떠나고 어디든 머무를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의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첫 상하이 여행이 끝나고 8개월가량이 지난 지금, 그 시작의 문으로 진짜 발걸음을 옮기는 실천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의 목적이 전업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글 하나로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작가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잘할 수 있고 늘 하고 싶었던 것. 세상에 조금 더 가치 있는 의미를 남길 수 있는 나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꿈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나의 힘들었던 실패와 상실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기록하는 '글쓰기'를 함으로써, 나처럼 꿈꾸는 청춘들이 겪는 가시밭길 삶에 위로를 주고 그들이 내 브랜드의 뮤즈로서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내 남은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 꿈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가 어떤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투자자를 위한 사업 계획서가 아니기에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지만, 그 은유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상하이 여행을 전후로 읽게 된 클레어 키건의 소설 단편집들을 통해 상실과 실패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 너는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 대한 위안과 확신을 받았던 만큼, 사진과 영상이 없는 백지의 무한한 우주에 적힌 글자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어루만질 수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나의 브랜드는 글자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기반이 되어 사진이 되고 영상이 되며 한 편의 영화가 되고 이것들이 상품이 되어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았을 때는 많은 투자금을 투입해 마케팅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초조했었다.

하지만 진짜 마케팅은, 진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브랜드의 진정성 즉,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진짜 경험들에 기반한 것이며, 그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경쟁할 수 없는 고유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 또한 브런치를 통해 기록할 예정이기에, 나의 힘들었던 실패의 기록과 그 시기에 경험한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 성장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어린 시절 글쓰기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 무언가를 만들고 쓰는 것을 하고 싶었다.

IMF로 아빠의 개인 사업이 어려워지고 열 평 남짓의 집에 네 식구가 살며 맞벌이로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외로웠던 9살의 나를 위로해 주었던 만화 영화들처럼 저런 위로가 되는 것들을 만들어 나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고 싶었다.

미술을 공부하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했지만 무언가 마음이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해, 뛰어나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오만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은 실패로 돌아왔고 상처를 남겼으며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서 날것의 생을 알게 되고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수 많은 삶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정적이고 꽤 괜찮았던 사회적 틀 안에서 보지 못했던 인간의 선악을 경험했고 그 안에서 내게 꿈을 잃지 말고 이곳에서 고여있지 말라며 다시 내 일에 대한 고민의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도 있었다.


생계에 목구멍이 턱턱 막혀 수많은 쓰레기들을 세상에 투척하는 물류 센터에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환멸과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현실과 악을 모르고 순수하게 '착하고 선한 영향력이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내가 물류 쓰레기 덕분에 먹고사는 현실 또한 받아들이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는 반드시 상실과 공허와 무력함을 알아야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경기도 외곽의 물류 공장에서의 나의 청춘을 사랑한다.

이 날것의 삶의 현장을 언젠가 완전히 떠나게 되면, 애증보다는 연민의 시선으로 아직 그 세계에서 누군가를 지키고 나의 진짜 삶을 찾기 위해 잠시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보고 싶을 것 같다.


내가 꿈꾸는 것의 본질은, 맑은 물에 피어난 청초한 꽃이 아닌 고통과 어둠의 시련을 겪은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다.


그리고 그런 연꽃의 삶을 사는 청춘들이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의 뮤즈들이며 그들의 이야기 또한 기록하는 글쓰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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