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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원으로 떠나 마주한 것 - 상하이 上海_1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아는 이가 없는, 70만 원의 상하이 여행.

by 진 JIN


2025년 2월.

난 여전히 경기도 외곽의 물류 센터에서 생계형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디자인 아르바이트도 병행을 했기 때문에 육체노동으로 먹고사는 근무일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일상은 늘 피로로 고단했다. 하지만 2023년, 2024년의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자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2월이기도 했다.


2025년 2월 19일 새벽엔 물류 센터에서 고단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2월 20일 오후 2시경에는 중국 상하이에 있었다.


고립된 세상에서 오랫동안 일상을 살아왔던 내가 훌쩍 중국으로 혼자 떠난 것이다.




작년 2024년 6월, 내 생일인 날에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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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드라이아이스 공장'에서 근무했던 그 첫날 이후 반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꽤 물류 현장에서 능숙한 일꾼이 되어있었다. 더 이상 죽고 싶을 정도의 무기력함과 우울감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일상의 권태감은 점점 더 심하게 느껴지는 시기였었다.


큰 여유는 없어도 '먹고사는' 생계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것에 적응해 나가면서 '살아가는 것'의 좀 더 내면의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이 일상의 권태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정체성을 다시 찾기를 원하는, '좋은 신호'였다.


다시 내가 목표하고 꿈꾸는 것의 좀 더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하는 때가 왔음을 느낀 것이다.


과거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했을 때만큼 안정적인 월급과 근무 환경은 아니어도 어찌 되었든 내 몸 하나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버티고 앞으로의 일상을 살아갈 만한 생계형 일의 패턴을 나름 만들었기 때문에 '어딘가로 떠나보고 싶다'라는 작은 여유가 생긴 것이다.


2024년 6월 16일 내 생일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혼자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생일이지만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를 위한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어딘가 좀 먼 곳에서 혼자 있고 싶었다. 다른 세상으로 연결이 되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 바다를 건너 더 먼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나를 상상하고 싶었다.


12,000 원 공항버스를 타고 영종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을 보며 몰래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리고 그 모습을 혹여 누가 봤더라면 설레는 해외 여행길에 어떤 사연 있는 사람이라 짐작했을 것이지만, 이마를 버스 창문에 바짝 대고 눈시울이 벌게진 정도였기 때문에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 30대 후반의 내 생일인 6월 16일, 인천공항 1터미널 3층 어느 카페에서 하루 종일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


반년이 넘게 물류 센터와 집만을 오가며 꾸역 꾸역 살아온 일상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사람들을 보니 괜한 부러움과 벅참으로 '나도 곧 나를 위한 여행을 가야겠다.'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마음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조금의 마음의 여유는 생겼어도 반년 넘게 생계형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왔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거나 물류센터와 집 이외에는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18년 지기 대학 동기들도 1년 넘게 만나지 않았으니 나의 세상은 오랫동안 생계형 삶의 틀 밖으로 확장되지 못했었다.



실패와 자괴감으로 스스로의 끝을 생각했었던 시간.

그래도 '일단 살아는 보자'라는 마음으로
물류 공장 한켠에서 나를 고립시키며
생계만을 위해 버텨왔던 시간.

어느 순간부터 극단적인 끝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적응해 나갔던 시간.

그리고 다시 '나'라는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2024년의 6월.

이렇게 고립되어 왔던 나의 세상을
다시 조금씩 다시 확장시켜 왔던 시간들.
그리고 이런 회복 과정의 진짜 시작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의 실행이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고 해가 바뀌어 2025년 2월의 어느 날, 난 진짜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중국 상하이[上海].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려 했었다. 20대 중반, 사촌 여동생과 함께 다녀온 도쿄나 큰 도시인 오사카가 아닌 작은 소도시 여행을 가려 했었다. 일본의 소도시 여행은 드물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처음이 아니니까 혼자 어딘가로 가기엔 '좀 더 익숙한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 판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면서 좀 더, 아니 훨씬 낯설고 큰 땅을 가진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는 이전부터 아시아 문화, 특히 동북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늘 중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낯섦을 이유로 배제해 왔었다. 중경삼림, 아비정전, 화양연화, 첨밀밀 같은 홍콩 영화를 너무 좋아했지만 홍콩과 중국은 늘 '다르다'라는 인식이 있었으니까. 가까운 나라지만 정말 그 나라로 가기엔 너무 낯설어서 갈 수 없었던 곳-.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넓은 대륙의 땅.


바다를 상징하는 중국의 도시, 상하이[上海].



그래, 상하이로 가자.
혼자 상하이로 가자.
가보지 않은 세상으로 가자.
익숙한 곳은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아주 세부적인 계획이 아닌 큰 일정만 잡아 놓은 채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먼저 예약했다. 항공사도 한국이 아닌 중국 항공사로 예약했다. 공항을 떠나는 순간부터 낯선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비행기에 탄 한국인은 나뿐이길 바라면서. 내가 모르는 언어만이 들리고 내가 모르는 글자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고 싶었다.

나의 고여있는 권태로운 일상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려웠으면 했다.


항공권사진.jpg 내가 이용했던 중국 남방항공[中国南方航空]의 탑승권.
남방항공01.jpg


'혼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평균의' 관광비를 산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몸무게가 많이 줄어 먹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상하이의 저렴한 길거리 간식만으로도 충분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여행의 목적도 식도락이 아니었으니까.

아침에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케이크 한 조각은 포기할 수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숙박도 작은 규모의 룸이어도 깨끗하기만 하면 괜찮았다. 고급 호텔을 예약할 필요도 없었다.


비행기 티켓 왕복 약 27만 원

2박 3일 숙박비 약 9만 원

교통 및 식비, 이외의 소비 지참금 약 30만 원


70만 원 남짓으로 누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냐 하겠지만 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주머니가 떠나고자 하는 내 의지를 꺾진 못했다.


탑승동까지 오자 '아 내가 진짜 홀로 어딘가를 가는구나.'를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아, 드디어 다른 세상으로 가는구나.

드디어 바다 건너의 다른 곳으로 떠나는구나.


불과 2023년, 2024년까지의 내겐 당장 스스로 자초해서 겪게 된 실패한 현실만이 내 세상의 전부였었는데. 드라이아이스 공장 레일에서, 물류 센터의 팔레트 위에 걸터앉아 간식 빵 한입과 달달한 우유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세상이 전부였었는데. 한때 무언가를 만들고 디자인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꿈이나 야망은 다 사라지고 없어진 줄 알았었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중국 상하이에는 어떤 예술가들이 살고 어떤 디자인들이 도시를 표현하고 있을까.

정말 중경삼림처럼 중국 도시의 색감은 엷지만 눈이 아린 네온의 노랑과 빨강과 초록처럼 느껴질까.


중경삼림의 왕페이도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 승무원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야말로 언제든 떠나고 어디든 머무를 수 있었다.


더 이상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도, 어딘가로 갈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것은 내겐 사치고 그럴 작은 여유조차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가난하다고
실패했다고
내가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난 내 의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비행기는 어느새 푸른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지울 정도로 높이 뜨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닌, 세상에 아직 나와본 적 없는 상처 많은 어린 고래가 처음 바다를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음 이야기는 [70만 원으로 떠나 마주한 것 - 상하이 上海_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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