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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Nov 06. 2018

치앙마이에선 다 괜찮아

"마이 뻰 라이"

Day58 / Chiang Mai, Thailand / 10.17


마이  라이


휘민이 덕에 알게된 소중한 인연, 달달손 작가님에게 책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16년 치앙마이로 이주해 2년 간 치앙마이 생활을 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담은 <치앙마이 일상집 -Permanant Vacation> 


자까님을 만나러 가기 전날, 나는 유심칩을 바꿨다. 알고보니 와이파이만 되는 유심이라 집 밖에서 데이터가 잡히지 않았다. 하필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러 약속한 날에 핸드폰이 먹통이 되버렸다. 그랩은 안잡히고, 인스타 디엠으로 연락도 안되고... 극도로 초조해진 나는 대로변에서 간신히 썽태우를 잡아 타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무 연락도 못한 채 10분인가 늦었는데, 작가님은 평온한 미소로 커피숍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게 무슨 민폐 첫만남인가?



어쨌든 함께 즐거이 밥과 커피를 마시고 작가님의 책 <치앙마이 일상집>
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껴 읽겠다는 초반의 다짐과는 다르게 단숨에 한 권을 읽고 말았다. 책 속에서 오늘 갔던 밥집과 카페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웠고, 작가님이 비올라를 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 신기했다. 무엇보다 잠깐 머무는 여행자는 알수 없는 담백한 치앙마이의 생활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치앙마이 일상집>은 호들갑 떨지도 않고, 쉽게 비교하거나 찬양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하게 치앙마이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그런데 그 문장 뒤에 머문 깊은 애정이 느껴지기에 나는 고작 한달 정도 머물렀으면서 그 시선을 갖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 곧 치앙마이를 떠나는 마당에 책을 읽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어쩌면 한달간 얕게 여행한 후에 읽었기에 더 공감하며 읽었는 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오늘의 지각에 대해 위로가 되는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치앙마이 친구들은 약속 시간에 늦어도 화를 내는 법이 거의 없다. 그저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리고 막상 만나서는 늦은 쪽에서도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고 기다린 쪽에서도 아무 말 않거나 “쨔샤 왜 이렇게 늦었어” 가볍게 한마디 하고는 만다. 늦으면 늦을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가 늦는다면 걱정을 해야지 화를 낼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 역시 다음번에 늦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약속 시간 맞추느라 발을 동동 구르며 살아온 나로서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옳기도 하거니와 서로에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첫 만남에 지각한 나를 위로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이 뺀 라이, 괜찮아! 라는 말이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누군가를 만난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책을 읽은 것도 모두 좋다. 이렇게 책 후기를 남기니 치앙마이에 오시는 분들, 떠나는 분들 모두 다 읽어보시기를 ! 치앙마이를 여행하는 숨겨진 꿀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치앙마이 일상집에서 좋았던 글귀들

치앙마이 생활을 결심했을 때 이미 가진 것 그러니까 그동안 번 돈이나 사회 경험 따위의 것을 잃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줄기차게 잃는 동안에 다른 한편에서는 내 삶이 이전보다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는 걸 나는 요즘 재봉틀을 돌리면서 종종 깨닫곤 한다.
‘내가 한창 잠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는 차를 몰고 숲을 찾아와 이렇게 빵과 함께 맛있는 아침을 보내고 있었구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친구 부모님과 인근에 있는 카페에 들러 주스도 한 잔씩 마시고 빈티지 마켓 구경도 했는데 시간은 겨우 오전 10시 반이었다. 이렇게나 긴 아침이라니. 우리에겐 각자의 아침이 있으니 나로서는 빵에게 잠을 양보하는 일은 자주 없을 테지만, 나나정글에서 빵과 함께 몰랑몰랑한 아침을 보낸 이후 시간을 ‘잘’ 보내는 일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막상 가서 음악을 들으면 다른 세상에 온 듯 새로운 감상에 바질 수 있었는데도 나는 왜 자주 가지 못했을까.
아무리 깊은 산중이라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볼거리를 찾아다니지만 도무지 이렇다 할 것이 없어 지나는 차조차 멈춰 설 일 없는 무수한 길들. 그 길을 종일 달리고 있자니 지구상에 인간이 살지 않는 땅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얼마만 한 땅덩이에 우리는 어깨를 부딪혀가며 살고 있는 것인지.
이번 치앙라이 여행은 그저 사바이 사바이(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뜻)하고 싶어 떠나온 여행이었다. 슬로우 라이프라면 치앙마이에 뒤질 곳이 없을텐데도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인지 나는 그새 또 다른 쉴 곳을 찾고 있었다.

* 치앙마이 일상집은 치앙마이 란라오 서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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