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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Jul 19. 2018

내가 계속 사랑하는 이유

숱한 상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당? 그게 뭔가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밀당'에 대한 글을 보았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관계를 정립하는 순간, 그리고 연애를 이어나가는 과정까지. 그 글은 밀당의 빈틈없는 스케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말이지, 같은 우주에 살고 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조금은 내 자신이 그 밀당의 고수에 비해 한심해 보인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연애라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면서 이런 삶의 트릭 같은 건 이때껏 깨우치지도 못했었다니.

남의 맘을 들었다 놨다, 간을 봤다 안 봤다 하는 밀당이라는 투자 대비 효율적인 연애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보험 따윈 없는 사랑만 한 걸까.

난 항상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항상 직진, 그 자체였다. 밀당은커녕,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마냥 제어 불가능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우당탕 부딪히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빠르게 빠져버리고, 느리게 아팠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였던걸까. 날 받쳐주는 그물망 하나 없을 벼랑에 올라서면서도 추락이란 가능성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금사빠, 상잊오'다. 금방 사랑에 빠지긴 하는데, 상처를 잊는 건 오래 걸린다. 연애에 있어서 나같이 가지가지하는 유형의 인간은 참 손해 볼 일이 많다. 라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거면 하나하나 상처를 받질 말던가.




영화 북 오브 러브 (Book of Love)


감정 같은 거 아낄 줄도 모르는 주제에.
그러게 기대를 걸긴 왜 걸어.

진심을 다한 사랑이 끝났을  난 내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하는 감정 절약 같은 건 흉내도 못 낼 거면서 뭘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지. 그도 그럴게  도박에 올인하여 모두를 잃은 건 나였기에, 내 자신만이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이 지나간 후 내가 한 것은 단순했다. 사랑에게 붙일 수 있는 제일 못나고 흉악한 말들을 붙이는 것. 영원한 사랑 따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애초에 사랑이란 건 사람들이 좋을 대로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라 정의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불평일 뿐, 나는 다시 한번 더 기대를 걸고 사랑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뒤로 이어진 숱한 연애에서 되도록 많이 사랑하고 되도록 많이 상처받았다.


한 번은 이렇게 미련한 불나방 같은 내 자신에게 짜증이 솟구쳤다. 매번 사랑에 내쳐지면서도 학습능력이 하나도 없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한숨을 푹 쉬며 아는 동생에게 하소연을 하자, 평소엔 시건방진 멘트만 날리던 놈이 긴 정적을 깨고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사람에게 매번 진심을 다 하는 거. 그건 난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누나가 용기 있다고 생각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 그게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누난 그만큼 용기가 많은 사람인 거지. 나는 그게 어려운 사람이거든."



영화 북 오브 러브 (Book of Love)



나는 예전의 연애에 대해 항상 '만약'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했다. 만약 내가 내 마음을 많이 주지 않았더라면, 만약 밀당을 했었더라면, 만약 내 자신을 내던지기 전에 손익을 계산했다면.


하지만 반대로 내가 뭔가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상처가 없는 대신 추억도 없었을 것이고, 잠깐이라도 슬픔과 맞바꾼 행복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진심을 다해 사랑할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것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밀당이란 연애에 있어서 자신이 덜 상처받기 위한 방법일 뿐,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 조금 모양 빠져도, 찌질해도 괜찮아.

나는 항상 내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를 부끄러워했다. 왜 난 내 패를 다 보여주는 찌질이일까, 상처만 받는 걸까, 이렇게 손해만 보는 걸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계산 없는 진심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누군가에겐 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멋있고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겁내고 눈치 봐서 상처를 최대한 받지 않는 것이 연애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그러니 내 감정에게만큼은 찌질하지 않은 나를 이제는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애초에 연애에 있어서 이기고 지느냐의 확률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어떤 확률의 연애들이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결국 내 진심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건 백 퍼센트의 연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 백 퍼센트가 되기 위한 길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라면, 그래 뭐 어때. 이 정도 상처쯤은 결코 아깝지 않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마 이런 식으로 계속 사랑을 할 것이다. 이때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듯 하다.




다니엘 : 나는 선인장처럼 온몸을 가시로 두르고 있어요. 그렇게 스스로 보호하는 거죠.
지아오 : 당신은 가시로 다른 사람을 찌르겠지만 난 항상 그 가시에 찔려요.
다니엘 : 아픈가요?
지아오 : 아파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듯 아프죠.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버리면 상대방이 나에게 맞는 짝인지 알 수 없잖아요.
다니엘 : 나보다 용감하군요.
지아오 : 수도 없이 실연당하다 보니 남는 게 용기밖에 없네요. 계속 실패하면 뭐 어때요? 또 실패하더라도 보란 듯이 버티면 되죠.


영화 '북 오브 러브, Book of Love' 중에서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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